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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30. 2017

인터뷰: 달아나지 마세요, 사랑으로부터

깨어나면 그 사람이 없는데도 세상이 너무 밝고 소란스러워서

  사실 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책이 나온 지 벌써 몇 년째인지 몰라요. 드라마도 이미 끝났고, 속편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각색된 부분도 상당하고요.


  그냥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소설은 소설이에요. 허구죠. 소설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나 말투 모두 저랑 너무 달라요. 굳이 모델로 삼은 사람을 꼽아보라면 음, 누가 있을까요?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이잖아요. 사랑이 전부인양 사랑을 하고, 밀당이라곤 전혀 모르고, 자신의 연애가 상당히 호구 같다는 걸 알지만 다시 또 전부를 내걸어버리죠. 세상에 자신만이 사랑을 하는 것처럼 자랑하는 스타일에요. 그런 면이 귀엽기도 하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현실주의자거든요. 사랑 앞에서 굉장히 소심하고 조심스러워해요. 감정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겁이 많죠. 그래서 저랑 반대되는 인물을 그려보고 싶어서 쓰게 된 소설이에요. 


  뭔가 인터뷰가 굉장히 변명이나 해명 같아졌네요. 어쨌든 덕분에 소설 이번에 19쇄 찍었습니다. 드라마 끝나고 잠잠했는데 출판사에서 19쇄 들어간다는 연락받고 기분 굉장히 좋아지던데요?


  무엇보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나 사랑했던 기억들을 조롱하거나 희화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사랑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의 사랑에 대해, 연애에 대해 글로 옮겨적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학부생들은 종종 실제 연애담에 대해 쓰곤 해요. 스물한 살, 스물두 살짜리들이 대체 어떤 경험이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왔고, 어떤 영감을 받았다고 근사한 작품을 쓰겠어요. 자기 이야기를 쓰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세상을 보게 되면서, 내 사랑 이야기는 글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연애를 몇 번 못 해보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지나온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는 마인드가 아직 없어요. 그리고 여전히 그 이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기도 하고요. 궁극적으로는 그 이별을 꺼내서 말할 정도로 아픔이 치유되지는 않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제 안에 엄청난 밤이 있어요. 헤어지면서 그 밤에는 달도 별도 뜨질 않아요. 태양은 이미 나를 비추지 않겠다며 날 떠나버린 뒤죠. 아무리 오래 있어도 어둠에 익숙해지질 않아 그 무엇도 볼 수가 없어요. 앞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던데 오히려 모든 감각이 무뎌져버려요. 밤들은 천천히 제 안으로 파고들어 더 깊은 곳에 닿죠. 어둠에 그렇게 파묻혀서 살아요. 그런데 사실을 알고 있어요. 내가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눈을 뜨고 싶지 않아요. 이 밤 속에서 깨지 않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거든요. 깨어나면 그 사람이 없는데도 세상이 너무 밝고 소란스러워서 오히려 슬퍼질테니까.


  음, 예전 작품이 이렇게 다시 주목받으니 굉장히 즐거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죠. 우연찮게 이슈가 되어버렸는데 5년만에 새 작품이 나왔어요. 이건 그 누구도 제 연애담이라고 하지 못하실 소재를 다뤘어요. 시간에 대한 이야기에요. 사건과 인물의 시간이 각기 다르게 흘러요.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타임슬립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출판사에서 유행 다 지난 타임슬립 소재라고 타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행스럽게 세상에 나왔네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벌어지는 개인의 시간에도 서로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묻고 답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요. 


  초판 나온 지 오늘로 딱 일주일인데 벌써 3쇄 들어갔어요. 다 김 감독님 인터뷰 때문인 것 같은데 제가 밥이라도 사야할까봐요. 아니다, 감독님 벌써 손익분기점 넘었으니 제가 얻어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어떤 주제 의식을 가지고 이 작품을 썼다고 단정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예술을 하는 모든 분들도 마찬가질 거예요. 작품에 대한 해석은 그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자유로워지는 거니까요. 첫 작품 나왔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칙릿이다, 그나마 잘 쓴 할리퀸 소설이다 이런 평이었어요. 굉장히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맞아요. 저는 앞으로도 사랑이야기를 쓸 거예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사랑이고, 가장 많이 제 감정을 움직이는 것도 사랑이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디테일한 사랑을 다루고 싶어요. 엄청 질펀한 사랑이야기도 쓰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 쓰면 또 제 경험이라고 생각하실까봐 겁도 나는데요? 사실 김 감독님 인터뷰 때문에 전화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진짜 둘이 사귄 거 맞냐, 지금은 무슨 관계냐, 복수하려고 소설을 쓴 거냐, 지금 영화로 어택이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을 거냐, 새 소설은 시기를 노리고 발간일을 잡은 거냐 등등이요. 처음에도 말했지만, 제 소설을 허구입니다. 인물, 사건, 배경 모두 허구에요, 뻔한 말이지만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거에요. 그리고 사생활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작품으로 저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에요. 작품과 작가를 동일 선상에 올려서 그 해석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만큼 작가를 슬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요? 



  달아나지 마세요, 사랑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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