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Mar 31. 2017

당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왜 일상 속에서 이렇게 불쑥 나타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걸까

  음, 혹시 그런 감정 느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 멀리에서 비슷한 이름을 누가 부르기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순간, 그래서 뒤를 돌아보아도 그 사람이 없다는 걸 아는데 뒤돌아보면 무너질 것만 같아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리는 어느 날이요.


  그날은 하필이면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날이었어요. 집 앞 편의점을 갈 때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늘 가지고 나갔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그렇게 엉망이었어요. 심지어 길이가 묘하게 짧아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을 때 두 번 돌리면 헐렁하고, 세 번 돌리면 꽉 조이는 머리끈을 들고 나갔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평소에 늘 착용하고 다니는 손목시계였어요. 그런데 무슨 장난인지 시계는 3시에 멈춰있더라고요. 출근길에 전지를 교체할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아 점심시간에 근처 백화점에 들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차를 회사 주차장에 대고서야 알았죠. 지갑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원증에 신용카드 기능이 있어서 사원증을 손에 쥐고 백화점에 갔어요. 혹시 점심 무렵에 백화점 가보신 적 있으세요? 주말과는 묘하게 다르죠. 유모차를 끄는 아이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문화센터에서 내려오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죠.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을 했었다면 나는 어쩌면 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꼬박 7년을 만났는데, 청첩장도 이미 돌렸고, 신혼집에 식기까지 모두 채웠는데 헤어질 수도 있더라고요.


  시계의 전지를 교체하러 왔다는 말에, 직원이 시계를 살펴보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사를 풀어 교체를 해주길래 별 생각 없이 기다렸는데 직원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 이 라인은 출시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잘 쓰고 계시네요. 지금은 단종 되서 나오지 않는데 여전히 찾는 분들이 많아요. 튼튼하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그 시계를 선물한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는 걸. 집에 두고 온 휴대폰은 그 사람과 같은 기종으로 맞춘 거였고, 애매한 머리끈은 그 사람과 플리마켓에 갔다가 고른 거였죠. 책상에 놓여있을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 사람이 지갑을 찾아주면서 우린 만나게 되었죠. 심지어 사원증과 연계된 신용카드사에 근무를 하네요, 그 사람. 


  헤어진 지 한참 되었는데 왜 일상 속에서 이렇게 불쑥 나타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걸까요.


  - 고객님, 교체 다 되었습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 아뇨, 없어요. 감사합니다.

  - 저 고객님, 괜찮으세요? 여기 화장지-


  그녀가 건넨 화장지를 받아들고서야 제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언제부터 울었던 걸까요. 그녀는 그냥 괜찮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 자리에 서서 저는 엉엉 울어버렸어요. 사실은 그냥 울고 싶었는데 울 빌미가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 달아나지 마세요, 사랑으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