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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01. 2017

우리들이 있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여자:  외로워.

남자:  (못 들은 척, 보고 있던 건프라만 조립하고 있다)

여자:  (남자 옆에 놓인 설명서 덮으며) 야, 나 외롭다고.

남자:  (설명서 다시 펼치며) 네가 그런 게 한 두 번이냐. 만날 외롭지 아주 그냥. 그러지 말고 나가서 연애라도 해. 문만 열고 나가면 널린 게 남자야.


남자의 시선이 설명서에 꽂히자

여자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남자의 입에 밀어넣는다.

남자,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는다.

남자의 왼쪽 볼이 불룩하다.

여자, 남자의 볼록한 볼을 톡톡친다.


여자: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며) 야, 나 갈래.

남자:  (시선은 여전히 설명서를 향한 채) 기다려. 치킨 시켜 먹자.


남자, 여자를 돌아보고

귀엽다는 듯 양볼을 잡아당긴다.

입에서 사탕을 빼어 여자의 입에 넣어준다.


남자:  (아기 달래듯) 이거 먹으면서 기다려.

여자:  네가 쏘는 거지? 치킨? 간장, 양념 반반으로 시켜야해.

남자:  야, 내가 전화만 걸면 사장님이 전화 받자마자 간장 반, 양념 반이죠? 이러신다.

여자:  지금 시켜. 그래야 너 그거 다 보면 바로 먹지.

남자:  알았다, 알았어.


니퍼를 내려놓은 남자가 전화를 걸며 화면에서 사라지면

여자가 건담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여자:  이게 그렇게 재밌나?


여자가 설명서를 보고 조립을 시작한다.


여자:  (큰 소리로 남자쪽을 향해) 야, 나 외로워! 김선우! 다 외롭다!

남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오늘 쉬나봐. 안 받아. 야, 그리고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누가 치킨을 시켜먹냐?

여자:  그럼 치킨 사먹으러 나갈래?

남자:  (트레이닝 복 차림의 여자를 위아래로 훑고) 너 그 차림으로?

여자:  왜? 내가 부끄러워?

남자:  너는 하. 그래. 너는 부끄러움이 없지. 훌륭한 현대 여성이다.

여자:  그래, 그렇게 훌륭한 현대 여성이 왜 애인이 없지?

남자:  (장난스럽게) 그래, 얼굴도 예뻐, 몸매도 아~ 죽여, 몸매만 죽이나?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요.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뭐가 부족해서 연애를 못하지? 진짜 문만 열고 나가면 남자가 반이야.

여자:  부족한 게 있지. 부족한 게 있어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외로운 거라고.

남자:  오, 그래? 부족한 게 뭔데?

여자:  (단호하게) 남자. 남자가 부족하지. 그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고 있어.

남자:  (정색하며) 됐다. 얌전히 있어, (건프라 가리키며) 건드리지 말고. 슈퍼 가서 냉동 닭봉이라도 사올게. 치킨을 못 먹어서 이상해졌네.


남자가 지갑 들고 일어나면 

여자가 벌떡 일어나 팔짱을 낀다.


여자:  같이 가, 나 빠삐코 먹을래.


남자가 여자 손을 잡고, 손에 들린 막대사탕을 자신의 입에 넣는다.


남자:  네가 먹고 싶은 게 치킨이랑 빠삐코 뿐이겠냐. 가자. 


여자가 엉뚱하게 끼워놓은 건담 팔과

다리 위로.


남자(N):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여자(N):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남자(N):  남자가 있지. 바로 나.

여자(N):  닭봉이랑 빠삐코!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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