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문을 열고 나가면
여자: 외로워.
남자: (못 들은 척, 보고 있던 건프라만 조립하고 있다)
여자: (남자 옆에 놓인 설명서 덮으며) 야, 나 외롭다고.
남자: (설명서 다시 펼치며) 네가 그런 게 한 두 번이냐. 만날 외롭지 아주 그냥. 그러지 말고 나가서 연애라도 해. 문만 열고 나가면 널린 게 남자야.
남자의 시선이 설명서에 꽂히자
여자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남자의 입에 밀어넣는다.
남자,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는다.
남자의 왼쪽 볼이 불룩하다.
여자, 남자의 볼록한 볼을 톡톡친다.
여자: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며) 야, 나 갈래.
남자: (시선은 여전히 설명서를 향한 채) 기다려. 치킨 시켜 먹자.
남자, 여자를 돌아보고
귀엽다는 듯 양볼을 잡아당긴다.
입에서 사탕을 빼어 여자의 입에 넣어준다.
남자: (아기 달래듯) 이거 먹으면서 기다려.
여자: 네가 쏘는 거지? 치킨? 간장, 양념 반반으로 시켜야해.
남자: 야, 내가 전화만 걸면 사장님이 전화 받자마자 간장 반, 양념 반이죠? 이러신다.
여자: 지금 시켜. 그래야 너 그거 다 보면 바로 먹지.
남자: 알았다, 알았어.
니퍼를 내려놓은 남자가 전화를 걸며 화면에서 사라지면
여자가 건담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여자: 이게 그렇게 재밌나?
여자가 설명서를 보고 조립을 시작한다.
여자: (큰 소리로 남자쪽을 향해) 야, 나 외로워! 김선우! 다 외롭다!
남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오늘 쉬나봐. 안 받아. 야, 그리고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누가 치킨을 시켜먹냐?
여자: 그럼 치킨 사먹으러 나갈래?
남자: (트레이닝 복 차림의 여자를 위아래로 훑고) 너 그 차림으로?
여자: 왜? 내가 부끄러워?
남자: 너는 하. 그래. 너는 부끄러움이 없지. 훌륭한 현대 여성이다.
여자: 그래, 그렇게 훌륭한 현대 여성이 왜 애인이 없지?
남자: (장난스럽게) 그래, 얼굴도 예뻐, 몸매도 아~ 죽여, 몸매만 죽이나?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요.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뭐가 부족해서 연애를 못하지? 진짜 문만 열고 나가면 남자가 반이야.
여자: 부족한 게 있지. 부족한 게 있어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외로운 거라고.
남자: 오, 그래? 부족한 게 뭔데?
여자: (단호하게) 남자. 남자가 부족하지. 그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고 있어.
남자: (정색하며) 됐다. 얌전히 있어, (건프라 가리키며) 건드리지 말고. 슈퍼 가서 냉동 닭봉이라도 사올게. 치킨을 못 먹어서 이상해졌네.
남자가 지갑 들고 일어나면
여자가 벌떡 일어나 팔짱을 낀다.
여자: 같이 가, 나 빠삐코 먹을래.
남자가 여자 손을 잡고, 손에 들린 막대사탕을 자신의 입에 넣는다.
남자: 네가 먹고 싶은 게 치킨이랑 빠삐코 뿐이겠냐. 가자.
여자가 엉뚱하게 끼워놓은 건담 팔과
다리 위로.
남자(N):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여자(N):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남자(N): 남자가 있지. 바로 나.
여자(N): 닭봉이랑 빠삐코!
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