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시네마
몇 번쯤 연습해보았을까. 네 이름
#1. 강의실 앞 복도 / 낮
암전 상태에서 타이틀이 뜬다.
- 그와 그녀의 시네마
화면이 밝아지면 강의실 앞 복도.
오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강의실에서 나오다 멈칫하며 뒷걸음질 치는 빨간색 플랫슈즈.
그 빨간색 플랫슈즈를 따라가면 반창고를 붙인 연의 무릎이다.
#2. 강의실 안 / 낮
재잘대는 학생들이 몇 몇 있다.
창가 쪽에는 천천히 부유하는 먼지가 보인다.
햇살이 꽉 찬 강의실 안.
톡톡- 하는 소리를 따라가면
강의실 벽에 기대에 뒤꿈치로 벽을
톡톡 치고 있는 연이다.
멀리에서 대화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차세정(E) 내일까지 현대철학 리포트 내는 거 알지?
윤재(E) (한숨 섞인) 야, 현대철학 듣자고 한 거 누구야? 내가 웹툰의 이해 이런 거 듣자고 했지? 내가 지금 아퀴나스나 홉스를 연구해야겠냐? 마음의 소리, 오무라이스 잼잼 얼마나 좋아?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차세정(E) (더 성질부리듯 말하지만 장난에 섞인) 그러게! 진짜 누구냐?! 야, 나야. 미안. 근데 대학생이 되었으면 철학 수업도 듣고 그래야지. 어?
윤재(E) 아오! 내가 다음 학기에도 너랑 시간표 짜나 봐라. 야, 잠깐만. 나 과사 좀.
차세정(E) (다정하다) 응, 빨리 와! 배고파!
소리가 그치고,
열려있는 강의실 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는 소리에
벽을 톡톡 치던 연의 발이 멈춘다.
연의 발치에 드리워진 그림자. 소리의 주인공, 차세정의 발이 성큼성큼 가까워온다.
차세정 (반가운) 연?
소리에 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리의 주인공과 얼굴을 마주본다.
여름 햇살이 드리워져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홍연(N) 몇 번쯤 불려보았을까. 내 이름. 하지만 이토록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다. 연. 선배가 단지 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나는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차세정(N) 몇 번쯤 연습해보았을까. 네 이름. 하지만 이토록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다. 단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나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멀리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3. 강의실 앞 복도 / 낮
구두코를 바닥에 콩콩 찍고 있는 연.
그 옆의 남자 스니커즈가 보이면
차세정 10분만 기다려. 윤재 금방 올거야.
홍연 네.
차세정 (연이 안고 있는 전공 서적을 보며) 전공 어때? 재밌는 것 같아?
홍연 (망설이다가 천천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차세정 (갑자지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내 휴대폰 번호는 알지?
홍연(N) 나에게 직접 알려준 적은 없지만 알고 있다. 메시지를 보낸 적은 없지만 보내고 싶었던 적은 많다.
차세정(N) 직접 번호를 물어보지 못하고, 신입생 명단에서 연락처를 몰래 적었다. 먼저 메시지를 보내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보낸 적은 없다.
연이 들고 있는 전공 서적을 만지작 거린다.
윤재(E) 끝났어! 가자! 어? 연이도 같이 있었네?
연과 세정이 돌아보면
구두를 신은 윤재가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세 사람의 발.
빨간 플랫슈즈, 남색 스니커즈, 진갈색 구두.
차세정 (어색하게) 야, 너 단렌즈 새로 샀잖아. 우리 찍어줘봐.
윤재 (반색하며 어깨에 매고 있던 카메라를 뒤로 감춘다) 여자친구 찍어주려고 산거야. 여친렌즈잖아. 여! 친! 렌! 즈-
차세정 (윤재의 말을 끊고, 목을 감으며) 여친 없잖아. 야, 찍으라면 찍어라.
윤재 (세정의 팔을 풀며) 알았어, 알았어. 둘이 서 봐.
윤재가 뒷걸음질로 두 사람에게서 천천히 벗어나면
멀찍이 떨어져있는 빨간 플랫슈즈와 남색 스니커즈.
윤재(E) (팔을 안쪽으로 휘휘 저으며) 좀 붙어봐.
빨간 플랫슈즈가 반 발자국 왼쪽으로,
남색 스니커즈가 한 발자국 오른쪽으로 발을 옮긴다.
그 위로 내레이션.
홍연(N)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심장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차세정(N)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알아채면 좋겠다. 내 마음을.
차세정 (숨을 크게 내쉬고) 자, 이러면 됐지?
세정이 연의 어깨를 당겨 자신의 곁으로 오게한다.
홍연(N) 아무래도 들킬 것 같다, 오늘. 어쩌면 들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차세정(N) 아무래도 말해야겠다, 오늘.
세정이 연의 어깨를 슬쩍 어깨를 감싸 안는다.
활짝 웃는 세정과 놀란 표정의 연의 얼굴 위로
셔터소리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