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 당신을 위로하는 일을 원했어요
영국 동요들은 ‘마더구스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라고 부른대요. 거위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노래와 이야기를 모은 여인을 마더구스라서 그렇대요. 제목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아이가 태어난 요일에 대한 동요가 있어요.
노래의 가사는 대충 이래요. 월요일의 아이는 얼굴이 예쁘고, 화요일의 아이는 신의 은총이 가득하대요. 수요일의 아이는 근심이 많고, 목요일의 아이는 먼 길을 가야하고요. 금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토요일의 아이는 삶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안식일에 태어난 아이는 아름답고 쾌활하고 착하대요.
아마 나는 목요일의 아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당신이 내게 오지 않으니,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던 겨울을 기억하세요? 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 당신을 위로하는 일을 원했어요.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당신은 사랑에 지쳐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무렵의 기억들은 참 이상하게도 하나도 낡거나 녹슬지 않고 이렇게 모두 떠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2년만에 조심스럽게 당신에게 연락했을 때, 당신의 반응에 정말 놀랐어요. 나는 열두 번쯤 고쳐 쓴 메시지였고 사실 당신에게서 답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휴대폰의 확인 버튼을 누르기까지 메시지를 쓸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정도였죠.
- 아직 영국이구나. 언제쯤 돌아와?
라는 짧은 메시지였어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던 건, 2년 전이었죠. 내가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어요. 이제 이륙한다고, 휴대전화를 끄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했죠. 영국으로 떠난다고. 고마웠다고. 당신이 나에게 회신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지 못해요. 이륙과 동시에 해지되었거든요, 그 휴대폰 번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언제쯤 돌아오는지 물어와서 참 많이 늦어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조금 더 일찍 용기 내지 못했을까. 사실 영국 생활이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영어도 생각보다 금방 늘었고, 영국 특유의 그 분위기는 늘 날 설레게 했죠. 하지만 당신에게서 그 메시지를 받은 순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에게
- 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돌아왔어요. 사진 작업은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들이 물었고, 가지고 온 짐이 달랑 캐리어 하나인 거냐고 부모님이 물으셨죠. 사진 작업은 당신과 같은 별자리 아래에서 하고 싶어졌고, 캐리어는 2년간 찍은 사진을 담은 외장하드와 카메라, 노트북, 다이어리, 보내지 못한 엽서 몇 장, 얇은 카디건 하나가 전부였어요. 책상이나 스탠드뿐만 아니라 옷, 구두 심지어 머리핀까지 스튜디오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왔죠.
내게 오지 않으니, 네게 가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당신은 짧게 답했어요.
- 여전해.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그 여전함 때문에 슬픈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당신과 나에요. 그래서 우리. 당신에게 나는 아련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은 사람인지 묻고 싶었어요. 하지만 답은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기대하는 답을 당신은 아마 하지 않을 테죠. 비겁하게 숨어버릴 거예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으로부터.
- 오느라 수고했어. 기다렸어, 긴 시간.
사실 다시 당신을 안게 되면 욕을 하거나 원망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 당신을 늘 찾아야했던 나의 긴 여정과 도망쳐버린 시간에 속에서, 내가 정말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당신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테죠.
그래서 나는 필요해요,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가는 목요일의 아이를 위해,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림을 하는 또 다른 목요일의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