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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9. 2017

목요일의 연인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 당신을 위로하는 일을 원했어요

  영국 동요들은 마더구스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라고 부른대요거위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노래와 이야기를 모은 여인을 마더구스라서 그렇대요제목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아이가 태어난 요일에 대한 동요가 있어요.
  노래의 가사는 대충 이래요월요일의 아이는 얼굴이 예쁘고화요일의 아이는 신의 은총이 가득하대요수요일의 아이는 근심이 많고목요일의 아이는 먼 길을 가야하고요금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토요일의 아이는 삶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안식일에 태어난 아이는 아름답고 쾌활하고 착하대요.

  아마 나는 목요일의 아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당신이 내게 오지 않으니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던 겨울을 기억하세요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 당신을 위로하는 일을 원했어요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당신은 사랑에 지쳐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그 무렵의 기억들은 참 이상하게도 하나도 낡거나 녹슬지 않고 이렇게 모두 떠오르는 걸 보면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2년만에 조심스럽게 당신에게 연락했을 때당신의 반응에 정말 놀랐어요나는 열두 번쯤 고쳐 쓴 메시지였고 사실 당신에게서 답을 기대하지 않았어요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을 때나는 휴대폰의 확인 버튼을 누르기까지 메시지를 쓸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정도였죠.

  - 아직 영국이구나언제쯤 돌아와?
라는 짧은 메시지였어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던 건, 2년 전이었죠내가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어요이제 이륙한다고휴대전화를 끄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했죠영국으로 떠난다고고마웠다고당신이 나에게 회신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지 못해요이륙과 동시에 해지되었거든요그 휴대폰 번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언제쯤 돌아오는지 물어와서 참 많이 늦어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왜 조금 더 일찍 용기 내지 못했을까사실 영국 생활이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영어도 생각보다 금방 늘었고영국 특유의 그 분위기는 늘 날 설레게 했죠하지만 당신에게서 그 메시지를 받은 순간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에게
  - 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돌아왔어요사진 작업은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들이 물었고가지고 온 짐이 달랑 캐리어 하나인 거냐고 부모님이 물으셨죠사진 작업은 당신과 같은 별자리 아래에서 하고 싶어졌고캐리어는 2년간 찍은 사진을 담은 외장하드와 카메라노트북다이어리보내지 못한 엽서 몇 장얇은 카디건 하나가 전부였어요책상이나 스탠드뿐만 아니라 옷구두 심지어 머리핀까지 스튜디오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왔죠

  내게 오지 않으니네게 가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당신은 짧게 답했어요.

  - 여전해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그 여전함 때문에 슬픈 게 몇 가지 있는데그 중 하나가 바로 당신과 나에요그래서 우리당신에게 나는 아련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은 사람인지 묻고 싶었어요하지만 답은 듣고 싶지 않아요내가 기대하는 답을 당신은 아마 하지 않을 테죠비겁하게 숨어버릴 거예요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으로부터.

  - 오느라 수고했어기다렸어긴 시간.

  사실 다시 당신을 안게 되면 욕을 하거나 원망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당신을 늘 찾아야했던 나의 긴 여정과 도망쳐버린 시간에 속에서내가 정말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당신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테죠
  그래서 나는 필요해요만나기 위해 먼 길을 가는 목요일의 아이를 위해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림을 하는 또 다른 목요일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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