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그녀와 나 사이의 침묵에 균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딱히 몇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대학을 조기졸업했고 그 이전에 취업하여 칠 년 가량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가난했다. 아침 일곱 시에 집에서 나서야 했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몸을 눕히는 건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월급은 입금이 되기도 전에 학자금 대출과 이자로 빠져나갔다. 3년간 다닌 대학의 학비를 갚기 위해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월급은 또래들이 비해 높았지만, 대출금을 갚고 월세를 내고 나면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거나 백화점에서 세일하지 않는 재킷을 사는 것이 어려웠다. 명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왕복 교통비, 부모님과 조카들의 용돈, 과일이라도 사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본가로 저렴한 한과 세트를 주문하는 것으로 명절을 대충 수습했다. 그렇다고 텅 빈 서울의 도심을 걷거나 즐기고 싶지 않았다. 늦게까지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양치도 하지 않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같은 원룸에 사는 사람들도 처지는 대충 비슷한 것 같았다. 오른쪽 집의 여자는 아침부터 낡은 가스렌인지를 딸깍이며 켜는 소리가 들렸다. 서너 번은 돌려야 점화가 되는 것 같았다. 윗집 남자는 본인 딴에는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켜놓았겠지만 복도까지 그의 취향의 음악이 흐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사십오만 원 짜리 서울 변두리 원룸의 수준은 딱 그 정도였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침대 누워 천장의 무늬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한참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도 아니고, 월급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일이 재밌어서 야근을 자처하는 게 아니라 업무 대비 인력이 적이 야근을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삶은 드마라틱하지도 않았지만 굳이 이 궤도를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것도 아니어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던가 ‘사표를 품고 사는 직장인’이라는 말에 딱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만둔다고해서 삶이 180도 변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 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도전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또래들은 비슷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일상의 가치에 대해 그 누구도 중요성을 말해준 적이 없이 살아온 세대였다.
내가 사표를 내고 심지어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것은 놀랍게도 한 사람 때문이었다. 광주에서 꽤나 큰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지원을 칼 같이 끊어버린 아버지도 아니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서 그와 결혼해야하니 헤어지자고 통보해온 옛 연인도 아니었다. 기껏 이백오십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계약직을 언제까지 할 거냐며 넌 삶은 치열함이 없다고 비꼬던 대학 지도 교수 때문도 아니었고, 건강검진에서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나이도 어린데 기관지가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좋지 않다고 기관지 확장 패치를 처방받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녀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왜 결혼을 해야하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저는.
단발머리는 한 그녀는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옷차림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한 직장인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묘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옆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 좀 독특한 사람이에요.
라고 말했다. 돌아보니 그 모임의 스탭 중 하나였다. 영화동호회였는데 블로그에 영화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블로거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작은 모임이었다. 매월 한 번 씩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었고, 전에 그 달에 선정된 영화를 보고 와서 가벼운 대화를 했다. 나는 겨우 두 번째로 참석해서 그런지 이미 다른 사람들은 오래 만난 사이처럼 살가웠다.
- 영화를 보고 나면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래서 이 모임이 좀 더 가치있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말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녀가 있는 옆 테이블은 거의 싸울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녀가 답답한 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둥글고 하얀 어깨가 드러났고 일순간 그 테이블의 모든 눈이 그녀의 어깨로 향했다 거둬지는 걸 보았다. 그녀가 가방에서 전자담배를 꺼내서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나는 휴대폰를 집어 들고, 전화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수증기 같은 연기를 연신 뿜어대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라벤더? 재스민? 향기롭지만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담배인건 마찬가진데 이런 향이라니. 회사 화장실에서 삼십 분 마다 자동으로 분사되는 방향제가 떠올랐다.
- 답은 찾으셨어요? 결혼?
내 물음에 그녀가 사레에 걸렸는지 콜록거렸다.
- 괜찮아요?
- 네, 이름이 뭐예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 본명이요? 아니면 동호회 닉네임이요?
동호회 카페, 블로그에서 닉네임을 사용하는 건 이해가 갔지만 실제로 만나서도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건 적응하기 어려웠다. 닉네임은 럽럽무비, 오늘의 그 영화처럼 영화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내거나 살바토레, 귀도처럼 고전 영화의 인물이기도 했다. 평소에 블로그나 다른 온라인 채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메이로즈, 밤비, 토니 같은 닉네임도 있었다. 내 닉네임은 게임에서 쓰던 새콤달콤복슝,이었는데 게임을 가입할 때 새콤달콤 복숭아 맛을 먹고 있었고, 이름은 6자까지만 입력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동호회 카페에 가입하면서도 별 생각 없이 입력해버렸는데 서른을 훌쩍 넘긴 남자의 심지어 덩치도 크고 무뚝뚝하게 생긴 나의 실제와는 거의 매칭이 안 되는 닉네임이기도 했다.
- 이름 알려주실 수 있어요?
- 윤재에요. 김윤재.
손을 내밀자 그녀가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 저는 윤홍이에요. 외자에요. 닉네임은 연희.
-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엄정화씨 이름이네요.
- 아시네요. 다른 사람들은 배우 이연희를 먼저 생각하던데.
- 아깐 왜 그렇게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이달 영화는 결혼이랑 딱히 관련도 없었잖아요. 임권택 감독 <취화선>인데?
- 장승업 첫사랑인 소운이 손예진이잖아요. 제가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러다가 나중에 김주혁이랑 찍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결혼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게 화두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전에 저는 결혼 그 자체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 으흠, 그래서요?
- 하, 죄송해요. 제가 지금 취기가 좀 올라서 흥분한 것 같아요. 이 동호회는 이상하게 모임 끝나고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면서 모임을 한다니까요. 가만 보고 있으면 홍상수 감독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아무튼 저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봐요. 독신주의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 결혼을 유지하면서 한 번 더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에서 결혼의 매력을 찾을 수 있죠? 원작 소설에서도 그랬어요. 윤재 씨는 찾았어요?
- 아뇨. 저도 못 찾아서 결혼 생각이 없거든요.
그녀 말대로 취기가 오르고 있는지 양쪽 뺨이 모두 홍조를 띄고 있다. 작은 손에 전자담배를 꼭 쥐고 있는 모습이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 아, 정말 우리는 삶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내가 진짜 배우자가 필요해서 결혼을 하는 건가, 아이를 왜 낳아야하나 이런 삶에 대한 고민 하나 없이 결혼적령기 따위의 말을 만들어내잖아요. 그리고 아무도 의심을 안 하죠. 서른 안팎의 나이에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하고. 결혼이 왜 필요하고, 자식 양육이 왜 필요한 건지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본인들도 답을 모르거든요.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처럼 일차원적인 게 아니라요. 사랑하면 사랑만 할 수 있는데 결혼이란 걸 하잖아요. 뭐 이십대 초반에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게 아닌데 결혼 안 하잖아요. 우리는 고민이 필요해요.
-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에요?
- 네.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 고민하고 있는데요?
- 한국을 떠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요.
- 결혼은요?
- 그러니까요. 제 삶에서 결혼은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면 난 오늘 윤재 씨가 마음에 들어요, 사실 처음에 윤재 씨가 들어온 순간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윤재 씨랑 결혼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사뭇진지한 표정의 그녀를 보며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을 내일이면 기억도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나는 오늘 윤재씨랑 자고 싶어요. 왜냐면 지금 나는 내 감정이 그래요. 윤재씨랑 자야겠어. 결혼은 하지 않을 건데, 오늘 나는 윤재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 혹시 이거 주사 부리시는 거예요?
- 아뇨, 아뇨. 주사는 아니에요. 이게 주사라면 내일 아침에 후회를 할 텐데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다. 바람은 그녀와 나 사이의 침묵에 균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녀 이마의 잔머리와 립스틱이 지워진 입술, 작고 하얀 어깨. 나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 이제 들어갈래요?
- 윤재씨, 저 주사 부린 게 아니라 고백한 건데요. 첫눈에 반했다고.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봤어요? 첫눈에 반한다는 거 믿어요. 윤홍 씨가 지금 취한 게 아니라면 더 좋겠지만. 나랑 결혼은 안 하겠지만 자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나는 자고 싶기 보다 결혼하고 싶어지는데요?
그녀가 입을 맞췄다. 그녀의 혀는 짧고 도톰했다. 꽃을 물고 있는 것처럼 향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전자 담배 탓이겠지.
- 왜요?
입을 떼며 그녀가 물었다.
-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요.
- 와, 윤재 씨 웃기는 사람이네. 날 언제 봤다고 결혼하고 싶대요?
- 그럼 날 언제 봤다고 자고 싶어요?
새침한 표정 위로 장난기가 서린다.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도도한 어른인척 하는 게 윤재 씨에겐 다 보이나봐요.
- 대충요. 근데 왜 굳이 그렇게 생각이 많아요? 말도 많고?
- 멋있는 척 하려고요. 살면서 가끔은 필요하잖아요. 나르시시즘의 순간 같은 거?
웃음이 났다. 하지만 다음 모임은 참석하지 못했다. 사표가 수리되기 전에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원룸의 세입자를 구했고, 케냐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케냐에서 버스를 타고 르완다로 간다. 다른 나라로 갈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퇴직의 이유와 떠남의 이유를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처럼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