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갈수록 귀여워진 마성의 고양이
귀엽긴 하지만 생긴 건 그저 그랬다. 애기때 사진으로만 봤을 땐 하얗게 참 예뻤는데. 처음 본 호두는 입과 코 거리가 짧아 약간 멍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둔한 성격이 외모에 그대로 드러났다. 겁도 많고 낯도 가렸다. 갑자기 뭔가가 닥치면 도망치고 싶어 하는데 제대로 도망가진 못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잡히기 싫을 때 쏜살같이 사라지는 앵두와 달리 호두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호두는 커가면서 예뻐졌다. 이 말을 하면 J는 "원래 예뻤다"고 반박하지만 엄마와 나는 단호하다. 원래부터 예뻤던 건 앵두고, 호두는 사랑을 받아서 예뻐진 거라고. 순박한 똘똘미가 흐르게 됐달까. 대체로 나사가 풀린 표정인데, 눈을 동그랗게 뜨면 똘망똘망하기 그지없다. 우리집 유일한 수컷 동물인데 목소리나 행동은 막둥이 여동생이다. 그래서인지 호두한테 말을 걸 때는 나도 모르게 "호두야, 언니가~" 하고 시작하게 된다.
외로움을 엄청 타는 호두는 사람만 쫄래쫄래 쫓아다닌다. 백수 시절 그 누구보다 많이 집에 붙어있었더니 날 제일 좋아했다.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계속 옆에 와서 비비적대고, 부르면 고양이치곤 자주 달려온다. 밤에는 꼭 옆에 누워서 자는데 자신의 체중을 그대로 기댄다. 중간에 볼일 보러 나갔다가도 되돌아와 이불속 들어갈 길을 만들라고 보챈다.
혼자 지냈던 여파인지 초기의 호두는 말수도 적고 골골송도 잘 못했다. 사람이 없으면 들어올 때까지 화장실도 안가서 툭하면 설사똥, 피똥을 쌌댄다. 멍청이처럼 실을 집어먹은 적도 있다.
집으로 온 뒤에는 달라졌다. 안으면 골골골. 앵두랑 우다다. 건강한 맛동산. 수다쟁이 앵두보다는 적지만 가끔 나오는 목소리는 애교 그 자체다. 말하는 횟수도 많이 늘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외로워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라 혼자 키워도 괜찮지 않냐"고 물으면 늘 호두가 머릿속을 스쳐 간다. 앵두, 호두 둘 다 외로움은 많이 타지만 호두가 좀 더 극단적이라서.
애교가 많고,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허구한 날 붙어 있으려 하고, 입도 짧고, 얼굴과 표정은 멍하고, 와서 질척대고, 겁도 많고, 문도 제대로 못열고, 소심하고, 스트레스에 약하고, 둔하고, 멍하다. 예뻐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