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그리고 인간수업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by 투연

개인적으로 2020년, 넷플릭스의 한국 작품들 중 주목할만한 작품을 꼽자면, 사냥의 시간과 인간수업을 뽑고 싶습니다. 이 작품들은 동시대 훌륭한 창작자들이 지금 우리 세대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 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아래와 같은 무거운 질문을 남깁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사실 사냥의 시간은 극장에서 개봉되었어야 하는 작품인데, 코로나 시국이 지금(2020년12월)처럼 엄중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하던 4월,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합니다. 그 이후 꽤 많은 기대작들이 극장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향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으로 보면, 영화는 극장이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되어 준비된 작품인데, 그것을 가정의 TV와 사운드 시스템으로 즐겨야 하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넷플릭스 플랫폼 안의 다른 컨텐츠들과 비교해보면서 즐길 수 있는 예기치 않은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덕분에 영화 사냥의 시간과 드라마 인간수업을 함께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얼핏 보면 서로 전혀 상관없는 작품으로 보이는 둘이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하는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우리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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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어린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좌:사냥의시간, 우:인간수업) (출처 : 씨네21)


사냥의 시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볼까요?

결과적으로 사냥의 시간은 대중들에게 만족보다는 허탈함을 안겨준 것 같습니다.

제가 즐겨 듣는 라디오의 DJ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 영화가 너무 헐겁다고 해야 할까요?. 엉성해서 깜짝 놀랐어요, 넷플릭스용으로 편집을 다시 했나?라고 생각했다니깐요”


사냥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저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느꼈던 마음을 적절히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들이 저는 감독이 의도한 연출에서 비롯된 부수적인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얼마나 치밀하게 범죄를 저지르는지, 그 범죄의 과정이 얼마나 스릴 넘치고 추격전의 고난을 얼마나 짜릿하게 극복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장르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해당 장르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

그저 사냥감이 된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과 공포가 주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일 것입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많은 부분들을 생략하고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일반 장르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이보다 더 당황스러운 경험은 없었을 거 같습니다.

감독은 그것을 포기하는 대신, 분위기(를 조성하는 미술, 조명, 연기, 상황 연출 등)로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고 계속 극을 따라오게 만들고 싶었던 거 같은데요, 안타깝지만 의도한 대로 작품이 훌륭하게 완성되었다고 보긴 힘듭니다.

강요하고 윽박지른 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강렬한 스타일로 제공되는 훌륭한 누아르 스타일의 미쟝센과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다 잡힐듯한 상황에서도 갑자기 세월아 네월아 계단을 내려오는 추격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 찰나의 순간 김이 빠지고 흐트러진 관객의 마음을 다시 되찾기란 정말 어렵죠.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장르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살리는 것에 작은 요소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인간 수업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작품은 내용도 분위기도 스타일도 사냥의 시간과는 정말 다릅니다. 드라마들은 보통 시리즈물의 특성상 초반에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파격적인 설정과 전개를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인간 수업도 매우 효과적으로 우리의 눈을 붙잡는 데 성공합니다.

고등학생이 성매매 산업의 중심에서 동급생을 알선해준다니요… 심지어 그는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입니다.

실로 4차 산업의 시대의 기술력과 돈이 최고인 현대의 가치관이 부끄러움 없이 힘을 합쳤을 때나 가능한 상황일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 2개의 작품을 연달아 보고 나서, 이 작품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청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제가 생각하는 답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사냥의 시간은 우리 청년들이 이 사회에 의해 끊임없이 괴롭힘 당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처참히 죽어갈 사냥감이라고 말하고 있고,

인간수업은 최소한의 윤리도 가치관도 다 무너진 이 사회에서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겨우 거대한 도시 속으로 도망친 뒤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창작자들이 우리나라 사회와 청년들을 이렇게 보고 있구나, 그 관점은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암울하구나….


사냥의 시간에서 주인공 일행은 추격자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도망치지만 정말 너무 허무하게도 다 무위로 돌아가죠,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의 손아귀, 그는 심지어 왜 그렇게 잔혹하게 자기들을 죽이려 하는지 묻는 주인공에게 명확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아닐까요?

영화는 마지막에 그 추격자의 이름이 '한' 임을 알려줍니다.

맞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 '한국' 그 자체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한국이 우리 청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라고 목놓아 울부짖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수업은 어떤가요?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술술 넘어가지만 드라마 속 세상을 살펴보면 이보다 암울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할 기본적인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실종된 각자도생의 시대로 내몰린 아이들은 결국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 것인데 그게 너무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주인공 '오지수' 의 아버지가 아들이 모아놓은 돈을 들고 도망치는 그 장면에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동안 기존 컨텐츠들에서 다뤄왔던 의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인간간의 가이드라인이 다 무너져버린 파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느낌이었죠.

고등학생 아들의 돈을 보고 눈이 뒤집혀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돈을 훔치고 그저 쑥스러운 미소 하나만 남긴 채 길 건너편으로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제 이 세상에서 어른들이 설 자리는 없구나 라는 절망을 엿봤습니다. 배규리의 부모들도 부모로서 실격이었지만 오지수의 아버지에 비하면 정말 순한 맛이더군요.

고등학생 아들의 돈을 훔쳐 도망가다 마주친 아버지의 쑥스러움 (출처 : 넷플릭스)

조폭 유대열은 어떤가요, 유대열은 어리숙하고 웃기는 캐릭터로 나오는 듯 하지만 실상 그는 주인공이 속한 산업의 잔혹한 상위 포식자입니다. 그 또한 어른이지만 주인공들을 그저 죽이거나 밑에 두고 부려먹어야 할 물건의 개념으로 인식하지 그 어떤 어른으로서의 역할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 학생이어서 좀 더 연민을 느낀다거나 특별히 과거에 대해 더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봐라,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아이들을 정말 아이들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유약하고 무능하여 실제로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없고(선생님과 경찰은 제도권 안에서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거나 과거에 그들 자신이었던 선량한 소수이며, 그들을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데 어떻게 그들에게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래?

결국 그 방법은 목숨을 내놓는 싸움밖에는 해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실장이 그의 죽음으로 유대열을 막아줬기에 그들은 겨우 다시 삶을 이어나갑니다.


이렇게 메이저 플랫폼에서 촉망받는 창작자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보는 건 정말 흥미로운 경험인 거 같습니다.


특히 사냥의 시간은 세간의 그 평가가 어찌 되었든 천편일률적인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창작자의 개성과 의지가 존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간수업이야 부연설명이 필요 없죠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매우 훌륭한 작품이고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낸 창작자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이제훈은 사냥의 시간 마지막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사냥감이 되어 도망 다니다가 주체적으로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돌아가는데요, 쉽지 않겠지만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모한 용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간 수업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이 남긴 피의 흔적을 보고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경찰의 시점으로 마무리됩니다.

어쩌면 우리 청년들 혹은 우리보다 어린 세대들은 그렇게 피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흔적은 강렬하고 오래 남아 모두의 시선을 끌지만 그들의 실제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죠...

인간수업_흔적.PNG 어른들은 그저 그들의 흔적만 겨우 확인할 뿐... (출처 : 넷플릭스)

아마 그 경찰도 아이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무성한 도시의 빌딩 숲 속에 무사히 숨어있기를, 언젠가 다시 어른다운 어른들이 그들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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