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그리고 프레스티지

현재의 놀란이 당신에게 버겁다면...

by 투연

영화 테넷에서 놀란은 관객들에게 대놓고 말한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이 말보다 더 이 영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이 영화는 1회 차 관람으로 이해가 어려운 영화다. 이것은 몇 번 본다고 해서 더 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니다. 테넷은 그 범주를 벗어난 종류의 영화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기본 개념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개념인데, (열역학, 엔트로피 따위의 개념들... 그런 걸 평소에 고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담) 그것을 설명해주는 방식도 매우 불친절하고 (설명을 포기한 것일지도..) 그 개념이 영화 속에서 재현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경험 또한 매우 낯설다.


예를 들면 어떤 장소에서 A의 시간은 순방향으로 B의 시간은 역방향으로 흐르는데, 이걸 실제로 구현하여 영화 속에 펼쳐놓는 모습은 대단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인지능력으로는 지금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 (역순으로 진행되는 폭발, 물건의 파손 등) 이 내가 이해한 컨셉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열심히 따라가려다가 이내 포기하게 된다. (마치 뇌에게 오른손과 왼손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발로는 서로 엇박자로 스텝을 밟아보라는 명령을 내리는 느낌?)


그 이후로는 '에헴 뭔지 모르겠지만 놀란 감독님께서 대단한 성취의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구먼'이라고 느끼는 게 최선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테넷은 훌륭한 영화적인 성취이지만 나 같은 일반 관객에게 그 어떤 감흥을 남겼는지 곰곰이 곱씹어 보자면 정말 아쉽게도 아아아... 이건 아니었다.

나는 이내 시무룩해져서 내가 왜 놀란의 영화를 기대했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VOD 풀리기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바로 봤는데!)


기존에 그가 전달했던 카타르시스들에 나는 매료되었었고, 이번에도 그 마음으로 기다렸다.

놀란은 플롯의 대가다. 그의 영화는 복잡하게 시간 관계가 뒤섞여 있거나, (메멘토, 프레스티지, 인셉션),

영화가 계속될수록 끝없는 미로에 빠지는 느낌으로 설계하기도 한다. (다크나이트)

때로는 시점과 물리적인 시간도 창조주처럼 주무르며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덩케르크)

그가 전달하는 영화적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 따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축된 플롯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질문을 던지며 따라오게 만들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시각적인 충격을 전달하는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근데 테넷은 놀란의 관심이 플롯보다는 그의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실제화하는데 치우친 건 아닌가 싶었다. 인물들 간의 관계, 그들의 선택 등등 영화 속 화학작용이 전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별로 공감도 안되었다.

결국 남는 건 뇌에 경련을 일으키는 인버전 설정이 눈 앞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그저 열심히 느끼며 바라보는 것뿐.


분명 대단한 작품이었지만, 우리 같은 모자란 애들은 뒤로하고 저 멀리 천상계로 떠나버린 놀란이 야속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누구나 편하게 몰입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관객을 꽉 옭아매고 영화를 펼쳐 보이던 놀란의 예전 작품들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놀란을 이해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 마음속에 프레스티지가 떠올랐다. 넷플릭스를 바로 열었다.


만약 여러분께서 놀란의 2006년작 프레스티지를 그저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이 볼만했던 흥미로운 그저 그런 영화로 기억한다면 지금이라도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영화를 감상하자.


프레스티지는 놀란 감독이 그의 동생인 조너선 놀란과 함께 각본을 썼는데, 정말 작정하고 대놓고 내러티브를 꽈배기 꼬듯이 꼬아놓은 뒤 관객들에게 과시하듯이 감상해보라고 던져놓은 영화다.

영화 속 시간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주인공 둘의 의식의 흐름을 이끌어주는 일기장 마저 나중에는 그저 서로를 속이기 위해 만들고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마치 눈 앞에서 순간이동 마술을 본 것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지금 무언가를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그게 그냥 눈 앞에서 사라진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상업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이보다 정교하게 구조화된 플롯을 가진 영화가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프레스티지가 놀란 영화의 정수로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 영화 자체가 놀란이 창작자로서 느끼는 거대한 압박감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그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프레스티지는 놀란이 영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창작자의 고통이 어떤지 절절히 고백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보든과 엔지어는 서로 최고의 마술사가 되기 위해 (어떻게든 관객들의 환호와 갈채를 얻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이 둘은 모두 놀란의 자아가 분열되어 나타난 모습들로 보인다. 자신만만한 시대의 트렌드를 선도해나갈 능력이 있는 천재 창작자 (보든) 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갈구하고 본인보다 더 뛰어난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며 고통받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의심하고 노력한다. 엔지어는 또 다른 놀란의 모습일 것이다.


이 영화가 건드리는 주요 테마는 집착이다.


완벽한 마술쇼를 완성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둘은 경쟁적으로 집착한다. 그 경쟁은 자기 파괴적인 행태로 나아가는데,

보든은 (쌍둥이지만 둘은 하나의 보든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내고, 엔지어는 막대한 돈을 쓰며 지구의 반대편까지 여행하고 급기야 스스로를 끊임없이 살해해야 살아갈 수 있는 비극적인 운명 속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며 사람들의 찬사와 갈채를 갈구한다. (정말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미 엔지어는 보든의 마술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며 그 진실을 외면한다. 궁극의 무결성의 작품을 향한 집착이 그의 눈을 가리고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집착만 남겨 그를 파멸로 이끈다)


보든이 쌍둥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그가 마술사로서 얼마나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는지 보여준다. 엔지어는 절대로 보든의 작품을 보든보다 잘할 수 없다. 쌍둥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집착은 기어코 그를 쌍둥이로 만들어내지만 그는 그 순간 자신을 잃어버린다. 끊임없이 복제되는 엔지어 중 누가 과연 진짜 오리지널 엔지어란 말인가... 결국 그는 보든을 이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예술가의 집착이라는 주제에서 이 영화는 나홍진의 전설적인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완벽한 도미요리를 주문받은 요리사는 기어코 그 요리를 완성하지만 결국 그 요리를 아무도 맛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예술이고 영화 아닐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


마지막 엔지어의 독백은 마치 놀란이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관객과 마주 앉아 관객에게 직설적으로 내뱉는 한탄과도 같다.

단 한번 관객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속일 수 있다면, 그들을 감탄하게 만들 수 있고 그때 진정으로 특별한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표정 말이야.

놀란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며 넋이 나간 사람들을 보며 엔지어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관객에게 더 큰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한 그의 집착은 더 커졌던 것일까?

프레스티지를 보고 나니, 이 영화로부터 14년의 시간이 흘러, 놀란이 테넷이라는 영화를 만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가 천재여서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들 같은 일반인들의 범주를 벗어나 더욱 새로운 세상으로 가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아쉽다.


테넷을 보고 혼란스러운 그대들이여, 그냥 깔끔하게 넷플릭스를 열고 프레스티지를 통해 놀란이 능수능란하게 이야기와 비주얼을 쥐고 흔드며 선사하는 위안을 얻고 그 마지막에는 놀란을 이해해 보자.


하지만 다음 영화에서는 좀 덜 놀라게 해도 좋으니 밀도 높은 영화로 관객과 같이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소백 한 바람을 전해 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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