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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Jul 08. 2020

혼자로 단단해지는 법

어느 20대 중반 여성의 독립 일기

  지방을 등지고 도망치듯 올라온 지 1년이 되어간다. 새로 정착한 경기도에서 벌써 네 계절을 지났지만, 취업을 해서 사회인으로 생활한지는 불과 4개월,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겨우 넘어왔다. 직장을 잡고 방을 직장과 조금 더 가까운 동네로 옮겼다. 출퇴근길 벚꽃이 예뻐 일기장에 생에 보았던 벚꽃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적었던 것이 기억난다. 4월 한낮 아래 얇은 벚꽃잎의 가장자리가 햇빛을 아슬아슬하게 비추었고, 5월 초여름밤 새빨간 장미는 아파트 단지 넘어 인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렇게 출퇴근길의 풍경을 두 눈에 담으며 이 동네에 정을 붙이고 있었다.


 24시간 정해진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것. 그리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 불을 켜는 것. 누군가 혼자 사는 일은 그렇게 단조롭고 우중충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 하천의 산책 코스가 예뻐 활기차게 밤 운동을 나가곤 했고, 출근 전과 퇴근 후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생산적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생산적인 사람이었다. 혼자인 생활에 너무 만족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내가 너무 독립적인 사람이라 가정을 꾸릴 성격은 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도 잠시, 혼자 살면서 마주하게 된 끝없는 집안일과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수많은 계획 수립과 이행에서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고, 혼자 해결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성취감은 어느샌가 버거움으로 바뀌어있었다.


 작은 사건, 사소한 소식으로부터 퍼지는 열등감이나 후회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들 때는 곧잘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나의 고민으로 인하여 남까지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소심한 마음에 연락하지 못할 때는, 방안이나 카페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게을러졌다고 느낄 때는 자기 계발서를, 우울할 때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은 이유는 작은 감정을 더 큰 감정으로 덮어버리자는 의도였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며칠이면 금세 지나가버릴 하찮은 거야.'라고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통해서 '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가'라는 부질없는 질문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 사랑해야  사람들을 돌아보곤 했다.


 혼자 살면 좋은 가장 좋은 점은 가족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혼자 있는 동안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당연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당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가족이 나를 위해 해 주었던 모든 행위들, 그것들을 혼자 처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족에 대해 진정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부터 나의 할머니와 부모님의 외로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온 것을 지금까지도 절대 후회하지 않지만,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커져 그들 옆을 따뜻하게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스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으면서 서로를 외롭게 했던 옛날보다, 며칠 걸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드는 지금이 낫다.


 여전히 혼자로 잘 지내는 법을 연구 중이다.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이번엔 감정의 스위치를 뭘로 건드리면 될까 고민한다. 사실 이렇게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기분이 자연스럽게 환기되는 동거인이 있는 사람들이 요즘따라 부럽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동거라는 생활 안에서의 불편한 점들을 감수해가며 그러한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거겠지. 라이프스타일마다 장단점이 있으니,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렇게 늦은 밤 생각이 넘칠 때,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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