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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May 09. 2020

비즈니스 스쿨의 위기 2

아이디어는 돈과 권력을 따른다.

"아이디어는 돈과 권력을 따릅니다." 비즈니스 스쿨의 역사도 이 명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세상 첫 비즈니스 스쿨은 ESCP Business School로서 1819년에 파리에서 세워졌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랭킹에서 수위권을 달리고 있는 Wharton Business School이 188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두 학교는 경제학자들과 주변의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즈니스 스쿨의 위기에 대한 원인을 경제학에 대한 경도에 귀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경영 행위와 시장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지요.

 

한편, 1908년 개교한 Harvard Business School은 인문학의 전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의미가 경영 활동의 기저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과 케이스 스터디를 중요시하는 것에서 아직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경영은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보수적인 학자들은 경영학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비리그의 Brown University와 Princeton University에는 비즈니스 스쿨이 없습니다. 심하게는 비즈니스 스쿨을 technical school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부기와 돈 세는 일을 학문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무지에서 오는 오해입니다.


경제학이 기초이든 인문학이 기초이든 간에 상관없이, 경영학과 비즈니스 스쿨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과연 경영이 "학문"인가 그리고 경영이 "학문"이어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Yes"이기도 하고 "No"이기도 합니다.


학문의 유일한 목적이 진리에 대한 탐구라면 경영학은 학문이 되기에 많은 하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Herbert Simon이 구분했듯이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만들어 내는 것이 학문이 될 수 있다면 경영학은 반드시 학문이어야 합니다. 전자는 normal science요 후자는 artificial science (혹은 design science)입니다. 전자에는 Physics나 Biology가 속하고 후자에는 Engineering이 대표적입니다. 명백하게 양자가 다 학문의 위치를 받을만합니다.


그러나 경영학은 심하게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많은 경영학자들이 Engineering에 가까운 토픽에 대해 Physics나 Biology의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카네기 재단의 리서치 스쿨에 대한 구분에 따라 더 많은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많은 신생 비즈니스 스쿨들이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차용해 연구 활동을 강화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심리학과 사회학의 방법론이 흔하게 차용되었고 경제학과의 이종 교합은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장기적으로 이론과 실무 간의 괴리를 낳게 되었습니다. 전혀 경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순수 연구자들이 박사과정을 거쳐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로 임용되고 이들의 열렬한 연구 활동으로 인해 많은 비즈니스 스쿨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리서치 스쿨에서 심리학 혹은 사회학 학위를 가진 비즈니스 스쿨 교수를 찾아보는 것은 과히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대학은 연구의 기초가 단단한 이들을 오히려 선호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에 있어서는 오히려 다학문적 발전이 기대되는 좋은 방향성입니다. 다만 비즈니스 스쿨에서의 이러한 사회과학적 연구의 지나친{?} 발전이 실무와 연구와의 차이를 점점 크게 확장시켜 왔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비지니스 스쿨의 기본이 무얼까를 생각해 볼 때 균형은 이미 무너져 있습니다.


마케팅 전공 교수인 저는 6년 전에 marketing research 코스를 위해 기존에 판매되는 textbook의 사용을 중단하였습니다. 수많은 marketing research 교재에서 적어도 segmentation/targeting이나 positioning의 방법론이 설명되어 있는 교재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은 참으로 의아한 일입니다. 90% 이상 회사에 취직하여 실무를 담당할 학생들에게 전공 필수 수업에서 통계에 기반한 여타 사회과학에서 배우는 과학적 조사와 통계 방법에 대해 90% 이상의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면 그것은 뭔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모든 과목이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요. 그러나 이러한 괴리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길을 잘못 들기는 쉬워도 한 번 잘못 든 길을 계속 가다가 바른 길로 가게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균형입니다. 마케터가 샘플링이나 회귀분석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장과 소비자를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일반 조사방법 혹은 통계방법 만을 배우고 졸업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납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러한 괴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교수가 normal scientist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케팅의 실무에서 사용하는 연구 방법론은 사실 정상과학적 방법이 아닙니다. 마케팅 실무에서 가설 검증을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들이 박사과정을 통해 배운 지식 만을 이용하고 확장하여 해당 과목의 토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제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MBA 프로그램의 유용성을 의심합니다. 비즈니스에서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제외한다면 그 의심은 거의 확신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 비용을 생각한다면 실제적 가치는 더 하락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쿨의 관리자들이 다 바보는 아니겠지요. 이미 이러한 문제점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에 대한 혁신을 일찍이 수용했던 학교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대학 사회에서 혁신의 속도는 일반적으로 가속을 받기 어렵습니다. 미래의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 존재할 것입니다.


경영학의 목적에 대한 방점은 진리에 대한 설명 보다 당면한 경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생산에 먼저 주어져야 합니다. 현실의 괴리가 인식된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10년 간 비즈니스 스쿨들을 모습을 관찰한다면 당신은 많은 재미있는 현상들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좋든 나쁘든 말입니다...



Fiona Apple (2020), Fetch the bolt cutters


*Title Image: “Running Horned Goddess” Tassili n’Ajjer, Algeria (6000-4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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