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기능적이기도 합니다. 선의의 경쟁이라면 회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마케팅의 성공은 경쟁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대중음악의 역사도 그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은 우리가 아는, 음악 앨범의 콘셉트가 완성되던 시절입니다. 그 한 중심에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긍정적인 경쟁심은 당시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뛰어오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rivalry의 시작은 비틀스의 1965년 앨범 [Rubber Soul]입니다. 이 앨범 전까지 비틀스와 대부분의 밴드는 요즘처럼 싱글에 중점을 두고 적당한 시기에 싱글을 묶고 새 넘버를 섞어서 앨범을 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루틴을 깨고 비틀스는 모두 새 곡으로 채워진, 어떤 일관성으로 통합되는 LP를 내는 시도를 합니다.
[Rubber Soul]은 1965년 여름 비틀스의 두 번째 전미 투어의 산물입니다. 투어 기간 동안 비틀스는 미국의 음악에 크게 노출되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밥 딜런과 버즈 같은 당시 탑 액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Rubber Soul]을 완성해내게 되지요. 이들이 받은 영감 안에는 비치 보이스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하기 약 2년 전부터 비치 보이스는 미국의 인기 최정상 밴드였습니다. 멜로디 장인인 폴 매카트니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비치 보이스의 하모니와 특히 1964년 여름 메가 히트곡이었던 [I get around]를 몰랐을 리 없지요.
폴 매카트니와 비치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 이 당시 이미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브라이언은 이 창의적인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본인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지요. 러버 소울 앨범은 Lennon-McCartney 파트너십의 정점입니다. 이후 폴은 밴드 내의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을 점차 확장하게 되어 비틀스의 음악은 무르익게 되지만 밴드의 균형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from [Rubber Soul}
창의에 대한 영감과 질투 섞인 경쟁심에 휩싸인 브라이언 윌슨은 이후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갖가지 음악적 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1966년 5월 그들의 11번째 앨범으로 발매된 [Pet Sounds]입니다. Wouldn't It be Nice가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지만, 놀랍게도 이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 뜨듯 미지근한 반응을 얻으며 겨우 탑 10에 턱걸이합니다. 대중이 비치 보이스에게서 원한 것은 서프 뮤직이지 세련된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 상업적 부진은 브라이언 윌슨의 향후 행보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의 영국 친구 폴 매카트니는 이 앨범에 카운터 펀치 충격을 먹습니다. 당시 음악적인 인정에 대한 거대한 야망을 키우고 있었던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보다 더 독창적인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경쟁적인 폴은 집착적인 완벽주의로 명반을 완성해낸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은 하나 그것을 좌시하지는 않습니다.
Wouln't It Be Nice from [Pet Sounds]
폴은 전작에 비해서 음악적으로 한 단계 전진한 비틀스의 차기작 [Revolver]로는 브라이언에게 크게 한 방 먹이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펫 사운드를 확실하게 밟아버릴 걸작이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펫 사운드 발매 시 이미 완성 작업에 들어가 있던 리볼버는 세 달 후인 1966년 8월에 발매됩니다. 비틀스의 앨범 중에 상업적인 실패작은 없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경쟁적인 판단과는 달리 리볼버 앨범은 비교가 불가한 걸작입니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비틀스의 최고 앨범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창의성과 음악적 균형감 면에서 리볼버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폴은 리볼버를 발매하자마자 이미 차기작에 대한 기획을 시작합니다.
Eleanor Rigby from [Revolver]
드디어 1967년 5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등장합니다. 미국 평론계에서는 거의 50년째 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추앙받는 앨범입니다. 두 말이 필요 없는 명반이지요. 게다가 스토리텔링까지 덧붙어 명실상부한 콘셉트 앨범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이후 무수한 아티스트들이 이 앨범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편, 브라이언 윌슨은 펫 사운드의 차기작 [Smile]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음반기획사에서는 바라는 반대의 길로 가는 브라이언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밴드 내에서도 큰 반발이 있었습니다. 윌슨 형제들과 사촌 그리고 친구로 이루어진 비치보이스에서 특히 리드싱어이자 사촌인 MiKe Love는 극렬한 반대자였습니다. 서프 뮤직을 하는 보이 밴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예술병이 걸린 리더 때문에 상업적 거탑을 무너뜨리기 싫었던 것입니다. (브라이언 윌슨이 재발견, 아니 재창조되는 1990년대 이후 Mike Love는 이 때의 일에 대해 말을 아낍니다.)
Smile 프로젝트의 아트 워크
1966년 후반에서 1967년까지 이루어진 스마일 프로젝트는 미완성인 채 종결되고 맙니다. 예술적 톤을 낮춘 [Smiley Smile]을 1967년 발매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얇은 멘탈과 이미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브라이언의 정신병적 증세는 이후 점점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강박적인 브라이언은 본인이 꿈이 산산조각 나버리자 큰 상실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악질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어 brain wash를 당하고 그에게 조정받게 되는, 황당한 인생의 불운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브라이언 윌슨은 거듭되는 상심과 고통의 수렁에서 급기야는 음악적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비치보이스는 중심인 브라이언 윌슨 없이 옛 명성에 기대는 구닥다리 밴드로 활동을 지속하게 되지요.
반면에, 비틀스는 이후에도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사망으로 인해 밴드의 지지대가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The Beatles (The White Album)]로 전성기를 연장합니다. 밴드가 해체되가는 과정에서도 [Abbey Road]와 [Let It Be]를 내놓으면서 상업적인 거탑을 완성합니다.
비틀스는 태생이 진정한 밴드였습니다. 진정성 있는 자기표현에 충실했던, 아니 그것을 목적으로 했던 밴드였습니다. 반면에, 초기 시절의 비치 보이스는 기획된 보이 밴드였지요. [펫 사운드]와 21세기가 되어서야 의도된 모습으로 발매된 [스마일]은 사실 브라이언 윌슨의 독립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게다가 브라이언은 조지 마틴과 같은 뛰어난 프로듀서와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열성적인 매니저의 뒷받침도 받지 못했군요. 지속하지 못했지만 그가 1960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음악적 천재였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승자를 따질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따질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밴드의 성공에 대한 복잡한 요인들을 이 일화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내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 두 사람의 경쟁 관계는 음악계의 큰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며, 경쟁심이 산업의 발전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2012년 Songwriter's Hall of Fame에 브라이언 윌슨을 추대하는 연설을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즐기십시오. 당신의 경쟁자는 당신의 은인일수도 있습니다.
[She's Leaving Home],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수록곡
*Title Image: [Block 2, Behind the Face Of..., 1979] by Nigel Hend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