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디자인 사고
앞 선 몇몇 글에서 디자인 사고에 대해 자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예컨대, [매우 강한 팀]에 대한 이론화가 디자인 사고의 캠프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극도로 전진된 이론화는 사실 같은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는 필자의 주장을 고려해 볼 때 그 유사성은 불가피합니다.
디자인 사고는 VST 이론화와 혁신에 대한 강조와 기본적인 마인드셋에 대한 부분을 공유합니다. VST 역시 혁신을 위한 이론화이고 인간 중심의 이론화입니다. VST가 혁신의 실행 과정에 대한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인간 사이의 과정과 팀빌딩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추구 사이에 아무런 대치와 긴장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고유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디자인 학계의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합니다. 그것은 제가 디자인 학계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디자인이란 토픽이 모든 실용 학문에 편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Tim Brown의 말대로 디자인은 디자이너에 손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토픽인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모든 경영의 리더들은 디자인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최근 업계 리더들의 인식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경험은 이상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에게는 많은 디자인 학자들이 밥그릇을 지키려는 좁은 소견으로 인해 더 큰 기능을 오히려 놓치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초입의 어느 컨퍼런스에서 어떤 유명한 대학의 비즈니스 스쿨의 학장과 개인적인 담소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비즈니스 스쿨에 국제경영학과를 만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경영에 화두로 떠오른 당시에는 미국의 많은 학교가 국제경영학과를 만드느냐 아니면 기존의 학과에서 글로벌 경영의 토픽을 강화하느냐의 두 가지 옵션을 갖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야 워낙 새로운 명명과 작명에 능하기 때문에 문젯거리가 아니겠지만 다소 보수적인 미국의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토론거리였습니다. 물론 추세에 대한 논리적인 판단으로는 그 학장이 결정한 바대로 후자가 옳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그 스쿨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해당 학문에서 최고의 수준이었지만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랭킹에도 포함되지 못했고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거기 학과도 없잖아?"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지요.
어떤 일이 새로 시작되면 그것에 관련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드러난 평판을 통해서만 인식하게 됩니다. 초기적 현상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더 이상의 발전을 방해하게 되는 일이 됩니다. 당사자들로서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 됩니다. 글로벌 경영의 추세는 그 후 20여 년의 시간 동안 일반화가 진행되었고 이제 경영과 글로벌 경영을 학과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실체를 잘 모르고 랭킹에만 집착하거나 얄팍한 포지셔닝 전략에 속게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진실로 명석한 사람들은 단기적 사익을 이유로 유기적인 대의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흐름을 이용합니다. Stanford D.School은 디자인이란 협소한 분야를 넘어서 모든 비즈니스 계열에 폭넓게 알려지기 되었으며 이른바 디자인 사고의 시원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환경에서 문을 닫지 않고 생태론적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실리콘 밸리라는 환경에서는 당연히 문을 닫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겠지요.)
이제 디자인 사고는, 아니 디자인 사고적 흐름들은 현실 대학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말 하나하나에도 캠프 이기주의를 경계하고자 합니다.) 대학의 순수 학문적 본질에 대해 거듭 반복하는 사람은 순수학문에 위치한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사람이거나 21세기에 존재하나 사고방식은 수백 년 전에 머물러 있는 자가당착적 인물일 것입니다. Herbert Simon의 말대로, 과학은 정상과학뿐만 아니라 디자인 과학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학은 진리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제문제의 해법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역사상 전자의 인재가 후자의 인재보다 더 필요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방향성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이 논지에서도, 대학은 직업양성소는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쥔 손을 편 사람이 그 중요한 것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사람이 그 시대를 대표할 것입니다.
*Title Image: Karim Rashid
[Put Your Records on] by Corinne Bailey Rae, live in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