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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 X 50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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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Sep 28. 2018

기회를 놓치더라도 버텨라

홀 앤드 오츠의 놓친 기회들 그리고 일관성

세대 감별 질문입니다. 혹시, 다이앤 레인(Diane Lane)을 기억하십니까? 브룩 쉴즈(Brook Shields), 피비 케이츠(Phoebe Cates) 그리고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와 함께 80년대 초 사춘기 소년들의 책받침을 삼사등분하던 여배우이지요. 이들이 출현했던 대표적인 영화가 있었군요. 브룩 쉴즈는 1980년작 [Blue Lagoon], 소피 마르소는 같은 해 [La Boum], 피비 케이츠는 1982년 [Paradise], 그리고 다이앤 레인은 좀 늦은 1984년 [Streets of Fire]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내 또래 친구들은 피비 케이츠나 소피 마르소 혹은 브룩 쉴즈를 더 많이 기억하겠지만, 저는 사춘기가 늦게 온 관계로 다이앤 레인에 더 강한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옛날이야기입니다만...  

이 장면은 이후 세대도 기억하겠지요... from La Boum

사실 여배우나 영화 얘기가 아니라 음악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다이앤 레인이 출현한 [Streets of Fire]는 음악으로도 많이 기억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더욱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넘버가 [I Can't Dream About You]입니다. 극 중의 소울 밴드 The Sorels가 부르는 이 인상 깊은 넘버는 사실 Dan Hartman이란 백인 아티스트가 불러 당시 Billboard Hot 100에서 6위를 차지하고 골드 싱글이 됩니다. (아마도 명보) 극장에서 이 넘버를 처음 듣는 순간, 사춘기였고 홀 앤드 오츠를 좋아했던 필자는 히트를 직감했지요. 딱 내 스타일인데...

상당히 펑키한 팝 넘버입니다.

이 곡은 사실 댄 하트만이 연전에 Daryl Hall and John Oates에게 오퍼 했던 곡입니다. 만들 때부터 이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던 넘버였습니다. 직관적으로도 소울풀한 록 사운드가 딱이지요. 홀 앤드 오츠가 불렀으면 당시 아마도 메가 스매시 히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홀 앤드 오츠는 이 기회를 놓칩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홀 앤드 오츠는 자존감이 만빵이었고 남이 작곡한 노래를 부른다는 아이디어에 그리 당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음 앨범도 완성해 놓은 상태였지요. 별생각 없이 거절하지요. 그 후 이십 년 후, 댄 하트만도 사망한 이후, 이들은 이 곡을 다시 리메이크하게 됩니다.

어쿠스틱 사운드로도 좋은 넘버입니다.

좀 더 이전 70년대에, 즉 홀 앤드 오츠가 슈퍼 스타덤을 얻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Rocky 시리즈로 슈퍼스타가 된 Sylvester Stallone은 이 듀오의 동네형이었습니다. 서로 막역한 사이였지요. 동생이자 역시 아티스트인 프랭크 스탤론과 존 오츠가 필라델피아에서 같은 밴드에 있었던 관계로 알게 되었답니다.


70년대 중반 실베스타 스탤론은 이 듀오의 1975년 breakthrough 동명 앨범(혹은 실버 앨범)의 [Grounds For Separation] 혹은 그런 풍의 노래를 제작하고 있던 본인의 영화 사운드트랙에 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사석에서 들은 이 이야기를 듀오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물론 그 영화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요. 참고로, 이 영화를 통해 연주곡 [Gonna Fly Now]는 차트 1위는 물론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고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버립니다. 참고로 이 듀오의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I want to fly. Gonna fly away. I'm gonna fly away."


영화가 성공한 후 이들을 만나게 된 실베스타 스탤론은 "야, 너네 왜 연락 안 했어? 정말 큰 기회 놓친 거야"라고 말했다지요. 우연하게도 영화 록키가 크게 흥행한 이후 시점부터 듀오는 80년대 초까지 몇 년간의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매력적인 퓨전 넘버입니다.

1980년대는 영화를 음악의 프로모션 툴로 대대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던 시기이지만, 홀 앤드 오츠는 이후로도 영화 음악과는 인연이 없게 됩니다. 1980년 후반에도 이들은 Eddie Murphy의 [Beverly Hill Cops II]를 위해 노래를 하나 써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전작 사운드트랙의 대대적인 성공을 이 듀오를 통해 잇기 위한 전략적 요청이었지요. 승낙을 하고 이들은 [Downtown Life]란 록 넘버를 만들어 냅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노래가 너무 맘에 든 이들은 계약을 깨고 그 곡을 자신들의 앨범에만 싣는 것으로 맘을 바꾸게 됩니다.


황당하게 된 해당 영화의 음악 담당자는 땜빵을 찾게 되지요. 1982년 말 홀 앤드 오츠의 [Maneater]로 인해 1위 곡을 갖지 못했던 Bob Seger가 섭외됩니다. 밥 시거는 [Shakedown]이란 그런저런 팝 넘버를 갖고서도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명백하게 영화의 덕이었지요. 반대로 듀오의 [Downtown Life]는 [Ooh Yeah!]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1988년 발매되지만 빌보드 차트에서 33위에 머물고 맙니다.

상당히 상업적인 록 넘버입니다. 해당 앨범으로 이들은 전성기를 끝내게 됩니다.

홀 앤드 오츠가 놓친 가장 큰 기회는 David Foster와 관련됩니다. David Foster는 20세기 발라드계의 거성입니다.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그는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히트곡을 양산하게 됩니다. 80년대 중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많은 한국 발라드 음악은 데이비드 포스터의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김형석과 김현철의 곡들을 듣게 되면 그 영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데이비드 포스터가 뜨기 전 초짜 프로듀서 시절 그는 홀 앤드 오츠의 앨범 두 장을 프로듀스 했습니다. 첫 번째 앨범 제작 중 데이비드 포스터는 특별히 자신의 집에 이들을 초대해 피아노로 직접 한 곡을 연주합니다. 당신들을 위한 곡이야 하면서요. 그 곡은 바로 1977년 차트 1위 곡이자 그래미 수상곡인 [After the Love Has Gone]입니다. 홀 앤드 오츠의 초기 명작인 [She's Gone]과 유사한, 그러나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곡이지요.


예상대로 이들은 이 곡을 거절합니다. "우리 스타일 아닌데... 우린 뉴 웨이브가 좋은데"하고 말이지요. 이 곡은 이후 Earth, Wind & Fire에게 전달되고 이 밴드에게나 작곡자에게나 최고의 곡이 됩니다. 데이비드 포스터는 1979년 [X-Static]의 제작이 끝난 후 홀 앤드 오츠와의 관계를 청산합니다. "도대체 내가 왜 필요한 건데? 그러려면 왜 너네들이 직접 만들지 않는거지?"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지요.

클래식한 소울 넘버입니다. [She's Gone]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서설이 길었지만 이 글은 홀 앤드 오츠의 실수담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왜 그들이 그런 결정들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정들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놓친 상업적 기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합니다. 단독적인 행동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인생 혹은 커리어의 차원에서 개별 행위를 판단한다면 말이지요. 이들의 선택은 본인들의 주관성이 입각한 것이었고 그러한 주관성의 강조가 아티스트의 민감성의 유지에는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주관으로부터의 음악적인 판단 없이 상업적인 판단에 근거한 결정 만을 하게 되었다면, 이들은 50년이 가깝게 장기적으로 음악을 해올 수 있는 에너지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관성에 대한 정의에 주목해 봅니다. 사실 홀 앤드 오츠는 아이덴티티와 포지셔닝의 관점에서 평론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던 아티스트입니다. 데뷔 후 1, 2집을 통해 쌓게 된 내향적인 R&B 듀오란 이미지를 뉴욕 펑크풍의 3집으로 무참히 깨어버리고 상업적으로도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후에도 이들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걸치게 됩니다. 사실 이들의 "일관성"은 특정 음악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컨템퍼러리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그것을 자신들의 음악에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모든 성과를 다 취하는 것은 만화적인 상상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대개의 비즈니스는 제로섬 게임이며 전략적인 선택에 의한 비교우위의 성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상상에는 소탐대실하게 되는 사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홀 앤드 오츠는 한 가지 통합된 형식의 음악을 1981년작 [Voices]를 통해 발견해내고, 1982년작 [Priviate  Eyes]를 통해 완성합니다. 한 면에서는 고집스러운 일관성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상업적 성공을 얻게 되지요. 또한 그들이 21세기에 와서 음악적으로 재평가받는 것은 그들의 통합해낸 고유한 퓨전 사운드가 세대를 가로질러 공감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뿌리인 Philly Soul과 미국의 전통적인 Blue Grass 및 Folk Rock, 그리고 70년대 초의 Punk  Rock과 70년대 말부터의 New Wave을 계속적으로 흡수하였고, Disco에서 Rap과 Hip Hop으로 진행되는  African American 뮤직신의 흐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면서 본인들의 음악을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다분히  20세기적으로 음악의 장르적 본질에 연연하는 사람에게는 얼치기이겠지만, 장르의 벽을 무너뜨리는 21세기의 Maroon 5 류의  음악에 친숙해진 세대에게는 굉장히 컨템퍼러리 한 음악이 됩니다.
진정성 있는 일관성은 시간이 발견하게 됩니다. 사라지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면 모든 진정한 일관성은 사람들에게 발견됩니다. 상업성과 예술성의 이분법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것을 권유합니다.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일관적으로 유지하는 밴드는 예술적이며 상업적일 것입니다.  

*Title Image: Diane Lane from [Streets of Fire],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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