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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Apr 29. 2017

돈이냐 예술이냐

대중음악의 상업주의와 작가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

대중음악에서 상업주의와 작가주의를 나눈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입니다. 대중을 지향한다는 것은 상업주의의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구분은 정도의 차이에 대한 것입니다. 대중음악을 하면서 대중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 뮤지션은 없습니다. 가끔 [Low]의 David Bowie처럼 뮤지션 자신이 매출이 "낮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거나 [Around World in a Day]의 Prince처럼 프로모션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콧대 높은 자신감 아니면 상업적 의도를 숨긴 또 다른 전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가주의는 시장에 대한 집착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아티스트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작가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해일 것입니다. 작가는 일견 시대의 산물입니다. 작가는 동시대를 본인의 경험을 통해 대표하는 것입니다. 시대정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작가에게 작가주의를 논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시대정신은 동시대의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므로 작가 혼자만의 환상 혹은 망상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팬 프랜차이즈를 추구하는 프로모션의 방법은 21세기의 대중음악신에서 더욱 효율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매스 프로모션을 통한 원샷 대박의 가능성은 감소했지만 음악적 지향과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뮤지션이 지속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술혼에 입각한 아티스트와 상업적인 아티스트를 작가주의와 상업주의로 구분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대한 유효성은 다시 고찰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업적이 된다는 것은 아이덴티티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연결됩니다. 이 경우, 상업적이라는 것은 시장의 추세에 따라 움직이려는 의도로 인해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사례를 말합니다. 또한 아이텐티티 부재의 사례에는 상업적이지는 않아도 아티스트의 다양한 취향에 대한 관심 혹은 변덕으로 인한 비일관성도 포함됩니다.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그 공통점은 역설적이게도 팬의 기대와 판단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려하는 것은 아티스트 본인의 판단이나 시장 전문가의 판단이지요. 상업성의 추구로 인한 비일관성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겠지요. 1970년대의 Hall and Oates는 전자와 후자의 이유가 혼합되어 있는 사례입니다. 공격적인 매내지먼트가 다양한 취향을 통합하려는 뮤지션십과 결합하여 결과적으로 밴드의 아이덴티티를 희석시킨 사례이지요.


또한 뮤지션십의 트렙에 빠져버렸던 1980년대 말의 Talk Talk은 싱대적으로 후자의 순수한 예가 됩니다. 아티스트가 음악적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을 보는 것은 아티스트 자신에게나 팬에게나 사뭇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공감을 벗어난다면 다시 협소한 작가주의의 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열망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실 자의반 타의반이지요. 많은 경우 정교한 감상을 해내는 평론가들의 영향을 암묵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90년대의 U2가 그 예겠지요. 역시 사회적인 인정이 그 기반에 깔려있으나, 그것이 지나치게 협소한 그룹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자본이 예술을 대하는 방법은 천편일률적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최대의 이익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대해서는 많은 이론과 신화가 있습니다. 자본가와 시장 전문가들은 단지 그러한 지식을 법칙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 자체는 그 방법에 있어서 천편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아방가르드가 아니라면 사회적 공감이 필수적이지만 항상 예술에는 유기적인 개성이 있습니다.


Fiona Apple은 2005년 발매된 명반[Extraordinary Machine] 이후 소수의 열성팬을 위한 컬트 아티스트의 길을 갑니다.


Fitz and the Tantrums은 2010년에 등장한 탁월한 네오소울 밴드였습니다. 2013년의 2집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2016년 발표한 3집에서 그들은 특징 없는 컨템퍼러리 팝 밴드가 되어 버립니다. Urban 장르가 팝의 주요 요소가 되었으므로 Maroon 5가 네오소울 밴드는 아니듯이 그들의 3집 동명 앨범은 더 이상 네오소울이 아니지요.


그들이 2집부터 대형 음악기획사인 Elektra에서 앨범을 발매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존재감 있었던 1집 [Picking Up the Pieces]으로 인해 Elektra와 계약을 맺고 비슷한 풍의 2집 [More Than Just a Dream]을 발매합니다. 이 서포머 앨범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게 되자 이들은 상업적 성공에 대한 내외부적인 압력에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당연히 상업적인 선택을 가져옵니다. 가장 쉬운 상업적인 선택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트렌디한 음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지요. 상업적인 과정은 개성의 포기를 요구합니다. 당연히 그 개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들의 소외 현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3집의 성적은 1, 2집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역시 한국 음악시장은 상당히 트렌디합니다.) 시장 전략이 항상 성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Fitz and the Tantrums의 이와 같은 발걸음은 재미있게도 그들에게 음악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Hall and Oates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tz and the Tantrums는 [Live from Daryl's House]에 출연하면서 Daryl Hall과 막역한 사이가 됩니다.


홀 앤드 오츠의 Daryl Hall에 대해서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King Crimson의 Robert Fripp이 70년대 말 Daryl Hall의 가창력을 탐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담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80년대 중반 Van Halen도 대릴 홀을 보컬리스트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의 음역대와 소울풀한 기교는 아트록 장르에도 대단히 적합합니다. 로버트 프립은 대릴 홀을 통해서 King Crimson을 능가하는 슈퍼그룹을 꿈꿨습니다. 홀 & 오츠의 잠재력을 믿는 RCA가 그것을 허락했을리 없지요. 결과적으로 그의 슈퍼그룹에 대한 꿈은 실현되지 못했고 단지 협업의 결과로 대릴홀의 솔로 앨범인 [Sacred Songs]과 로버트 프립의 솔로 앨범인 [Exposure]를 산출하게 됩니다. (둘 다 명반입니다.) 그러나 이마저 RCA의 방해로 인해 [Sacred Songs]은 제작 3년 후인 1980년에서야 발매되지요.


로버트 프립은 자본의 예술에 대한 무이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자본의 논리는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무시하고 그것을 일정한 포맷에 맞추어간다고 말이지요.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아티스트로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대릴 홀이 음반기획사의 상업적 전략으로 말미암아 시장에서 흔한 꼭두각시가 되어 간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꼭두각시였든 아티스트였든 대릴 홀은 80년대 그 포텐셜을 다 터뜨립니다. RCA의 전략은 사실 당시 시장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그것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의 음악시장 환경으로 보았을 때 비즈니스 전략상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Robert Fripp은 Daryl Hall의 가창력을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예술과 돈 간의 균형점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적어도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는 대안적인 관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티스트와 팬 간의 소통은 음악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발표되는 모든 예술은 사회적이며 어느 정도 시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타겟 없이 매스를 지향하는 극단적인 시장에 대한 고려 그리고 (반대로) 시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작가 자신의 변덕에 기초한 창작 활동은 양자 모두 사회적인 공감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음악 상품에 대한 마케팅은 시장이냐 예술이냐 하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과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렌즈를 통해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20세기의 공룡 음악기획사들은 멸종했거나 서서히 멸종해가고 있습니다.



[Moneygrabber] by Fitz and the Tantrums ft. Daryl Hall (2011).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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