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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Apr 21. 2019

안보여야 신뢰한다

2017년 대선을 치루며



투명성에 대한 담론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활발하다. 정보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클릭 한번으로 얻지 못하는 정보를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평생 얼굴을 직접 마주하기 힘든 지구 반대편의 또래 친구들이 무슨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물리적 거리가 사실상 소멸되어버렸고 우린 그 어느때보다 가깝고 투명한 사회속에 살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남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남에게 똑같이 보여질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엔 언제나 사회의 논리에 의해 긍정될 수 있는 것들 만이 내놓아진다. 설령 그것이 나의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투명한 사회는 곧 부정의 것들이 거세되어버리는 긍정의 사회다.



하지만 온갖 아름다운 것은 부정으로부터 파생된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 부정이다. 긍정 속에서 물음은 피어날 수 없다. 묻지 않아도 직접 봄으로써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문하며 삶을 구성하는 주체적 존재이자 온갖 부정으로 점철된 미지의 생명체이다. 아무 장애물없이 최고의 효율로 오고가는 정보의 전달이 아닌 주저하고 고민하는 망설임과 수도없이 묻고답하는 소모적 토론이 우리를 즐겁게, 가치있게 만들어준다.



정치 또한 부정이다. 정치는 의견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긍정은 의견이 없고 아무런 방향도 없다. 그렇기에 긍정사회 속 정치는 실체가 없다. 다만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만 있을 뿐이다. 제도는 차갑고 철학을 결여한다. 우리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을 수 없다. 기계적 메커니즘은 오직 작동(作動)할 뿐이다.



우리는, 특히 2017년의 한국은 정치인의 투명함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의 숱한 시간들은 밀실 정치에 대한 분노와 진실에 대한 갈망을 의미했으리라. 전 국가원수의 꽁꽁싸매진 7시간을 그토록 밝히고자 했던 이유이다. sns를 통해 국민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는 정치인은 이시대의 유연하고 바람직한 정치인의 표상으로도 자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못할 것이다. 설령 그들이 이것이 진실이라며 떳떳이 밝힌다 한들 그게 정녕 진실인지는 알도리가 없다. 이는 불가능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이자 알면서도 저지르는 모순인 셈이다.



불투명의 필연적 속성을 자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투명은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모든걸 아는 것은 신뢰를 가져올 수 없다.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뿐인 것이다. 불투명으로 매개된 사람들 사이에는 간극이 생기고 이는 긍정사회를 매끄럽지 못한 부정사회로 만든다. 갈등과 의견이 난무하는 능동적 사회는 공론의 장을 담보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합의가 적극적으로 수렴될 수 있다. 즉 살아있는 사회가 조성되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신뢰가 마냥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2017년의 새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인이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몫이다. 고도화된 사회를 꾸려나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이다. 모든 것을 까발려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을 행태를 보이는 것은 물론, 혹여나 보이지 않더라도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정치를 행하는 것이 , 밀실정치에 신물을 느껴버린 지금의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방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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