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더러우면 티를 내야하는 이유
요즘 인간관계에 이제 취약해져버린건 아닐까 생각이 들정도로 타격을 받는다. 남들이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과 행동들이 따갑다. 내가 섬세해진건 알겠는데 저들이 무례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내 입맛에 맞게 교정할 수는 없을텐데 그럼 손절? 그렇게 하나둘 떠나보내다 내게 남아있는 이가 하나도 없으면 우째. 나도 적당히 무뎌져야 할텐데 말이다.
곧 대만으로 가기전 마지막 모임차 기분좋게 만나는 자리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무나 경험해보지 않았을 소재로 출국을 결심한 내가 전형적인 한국라이프에 충실한 사람들에겐 신기한 사례일 터이다.
헌데 출국을 결심한 마음이 사실은 왜곡된 것이라느니, 그런 이유라면 절대 안가겠다느니 따위의 말을 어떻게 출국 며칠 앞둔 본인 면전에서 내뱉을 수 있을까? 제대로 정신이 박힌 친구라면 말이다.
'네가 무슨 말하는 지 이해했어.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너랑 다르게 생각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거 같아',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랑 나오는 결론은 다르지 않을까?'
폭력적인 말들에 내놓은거라곤 고작 이 아름다운 문장들 뿐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어디 뭐 말 예쁘게 하는 법 학원이라도 다녔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도 애를 썼다. 나를 공격하고 내내 기분안좋게 만드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아! 참고로 '내'가 한 말이다.
'내가 그렇다는데 니가 뭐라고 틀렸대', '혹시 싸우자는거냐? 왜 시비야' 를 내뱉으며 기분나쁨을 팍팍 티내도 전혀 손색없었을 무례함이었다. 보살도 아닌게 흉내를 내고 있으니 나도 참 문제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타격이 점점 잦아지고 심해지는 이유가 좀 뚜렷해진 기분이다. 솔직하지 못해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표현해서 무례를 알리면 될일이다. 하여 나를 지키면 될일이다. 왜 그 와중에 공격하는 이를 배려하겠다고 바보처럼 말을 에둘러 하고 있냐는 말이다. 왜 직설적인 말을 못하냐는 말이다. 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에 그토록 조심스럽냐는 말이다.!!!!!!!!!!!!!!
화가 나면 인정해야한다. 나는 가만보니 그걸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에이 그냥 내가 참아버리지. 별거 아닌데 싫은소리 할바에 그냥 넘겨버리지. 그렇게 지난 시간을 살아왔다. 그래도 인생이 무탈하게 굴러갔다. 화가 안났기 때문이다. 헌데 지금은 난다. 쉽게 난다. 허나 이를 인정하지 않고 화를 다루는 방식, 나아가 이걸 표현하는 방식은 여전히 구버전이다. 표현하지 않고 덮어버리기 일쑤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호환 문제가 생긴 셈이다. 스트레스가 생긴다. 친구를 잃는다.
왜 싫은 소리에 그렇게 용기가 없는지 모르겠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것일까? 상처를 주는 것이 싫어서일까?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만 하면 모든 인간관계가 다 원만한 줄로만 알고 살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것을 금기시하며 살았다. 관계에 긍정적이지 않은 기분을 드러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헌데 내가 상처를 받기 시작한 이상 더이상은 이런 방식이 맞지 않다. 내게도 괴롭고, 결과적으로 관계도 파국으로 닿는다.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뒤탈이 나지 않도록 순간을 잘 넘어가는 것, 괜히 찝찝함을 남기지 않는것, 나중에 감정이 추스려지고 나서 '그때 그냥 좀 참을 걸' 미화하는 습관들이 모두 이 감정을 삼켜버리는 성향을 강화시켰겠지. 또한 '우리 사이에'라는 관계에 대한 특수적 호의가 참으로 큰 몫을 한다. 대체 우리사이가 뭐길래 안되는게 되는 걸까.
가장 좋은 것은 다시 화가 나지 않던 성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겠다. 그게 어떤 성향이었는고 생각해보면 단순히 무딘 거라고만 여겼는데, 그것만은 아닌 듯 하다. 짬이 차는 것도 있었다. 이런일 저런일 경험하며 상황에 대한 해석이 많이 축적되었다. 그게 나름 연역적 귀납도 가능해서 비슷한 상황이기만 해도 기가막히게 공통 맥락을 뽑아내어 지난 경험의 해석과 연결짓는다. 하나의 경험으로 탄생한 해석은 여러개의 상황을 커버하고, 거기서 파생된 또다른 해석의 수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에 따라 나는 쉽게 빡치는거겠지.
옛날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현상 자체만 바라봤을 일인데, 이제는 과거의 교훈에 의해 누군가의 부족함과 배려가 보이고 그에 따른 서운함과 호의가 보인다. 데이터의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뭐,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인식해야 그런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니 인식의 촉수로 작용하는 '안무딤' 성향이 가장 근본적인 트리거인 것은 맞는거 같다. 헌데 그것은 불가항력의 영역이니 ..손 볼수 있는 녀석부터 건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인간관계와 화에 대한 영상이 자주 뜬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잊고 있던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생기는 모양이다. 피해주는 사람에 대한 현아의 명언이 담긴 영상이 있었는데, 그 상황을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이었다. 대만 가기전까지 많은 이들을 앞으로 더 만날텐데 부디 손절리스트에 추가인원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싸리 약속을 줄이는 것도 고려해봐야지. 영영 안볼바에야 일년 안보는게 나을테니 말이다.
이젠 정말 기분나쁘면 바로 표현할거다. 말이 어렵다면 침묵과 표정으로라도 드러낼거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차근차근 해볼거다. 성공할때 마다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스스로를 칭찬할 거다.
왜 기분이 나쁜지 생각이 명확치 않아도, 말이 정리가 안되어도 선표시/후수습하려 한다. 최소한 상대가 쫄기라도 할테니. 어쩌면 그가 알아서 수습을 해줄지도. 기분망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항상 뒤처리는 내몫이어야 하냔말이다. 난 더이상 보살이 아니다. 남 배려한답시고 나의 마음을 돌보지 않아도 무탈하기엔 이제 화가 많아졌다.
주제를 알아야한다. 옛날 처럼 나를 대해선 안된다. 성질이 나쁘면 나쁜대로 티내고 살아야 된다. 그래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