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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Jul 16. 2021

악플이 달렸다

생애 첫 악플 체험기

브런치를 포함해 몇군데 글을 기재하고 있다.

어디에 글을 올리든 보통 두자리수 내외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소소한 곳들이다.

작지만 오래된 단골 한두명이 가끔 찾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좋으면서도

글을 발행하자마자 수많은 하트와 리플이 달리는 인플루언서들의 자리를 흠모하곤 한다.

난 언제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하나가 일반인(글을 즐겨 읽는 애독가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 시선이 많이 닿는 곳에 노출되어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분마다 백단위가 바뀌는 조회수를 보며, 신기하면서도 참읋 짜릿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조회수에 비해 좋아요와 코멘트는 없었지만 그저 많이 읽히는 것만으로 마치 영향력이라도 미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 그 때 살짝 눈치를 채긴 했다. 많이 읽히긴 했지만 그만한 공감을 받지는 못한 글이구나.

힘겹게 공들여 몇날몇일을 적은 글도 아니었기에 거기까지 기대하는건 욕심이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고 이틀이 지난 오늘, 다른 플랫폼의 같은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반가운 알람이 울렸다.

신나서 들어가봤더니 갑자기 온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진짜 개소리네요 블라블라'


악플이었다.

저질스러운 표현, 맹목적인 무논리, 시커먼 의도.

이리보고 저리봐도 악플이었다. 그것도 지독한 악플.



길지 않은 그 몇글자를 보고선 뇌가 정지해버렸다. 수업시간에 잠시 폰을 보다 확인을 했던건데 더이상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심각하다 말만 들어봤지 내가 악플을 받게 될줄이야. 그것도 이렇게나 지독한 *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을 읽어주는 오직 소소한 범위의 사람들로부터 가끔 뜨뜻미지근한 관심만을 받아왔다.

악플이 흔하지만 내가 받게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말이다.

충격이 상당했던 이유다.




처음 든 생각은 철저히 이성적이었다.

논쟁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나를 향한 명백한 공격이었기에 바로 신고를 했다. 삭제도 해야되나 고민도 하기전에 신고를 누르니 바로 댓글은 삭제되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됐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화면을 끈 이후부터 끊임없는 생각의 굴레가 시작됐다.



이성 다음 찾아온건 분노와 후회였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 왜 갑자기 열폭이야? 대체 뭔 논리야 글은 제대로 읽었나?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왜 함부로 재단해? 해도 속으로 생각하지 왜 그걸 굳이 글자로 쳐가면서까지해? 내가 무슨 어디 대자보라도 붙였어? 개인 sns에 끄적인 글에 와서 뭐하는거야?

'댓글이 개소리네요'하고 똑같이 응대를 해줄걸  바로 신고를 해버렸을까.  생각이 얼마나 짧고 아둔한지 참교육을 시켜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분노가 그칠 줄 모르다 이번엔 방향을 달리했다.

인생을 살며 한번도 못들어본 소리를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그것도 너무 쉽게 이토록 무방비상태로 듣게 되었지? 인터넷이 진짜 문제긴 하다. 이건 대체 너무 편리하게 글자를 눌러재낄 수 있는 편재성의 탓이냐 아님 아무말이나 여과없이 뱉을 수 있는 익명성의 탓이냐. 뭐가 됐든 어디로 튈지 모를 인간에게 이런 무시무시한 도구를 맡겨도 되는걸까.



분노가 살짝 가시니 다음은 연민이 왔다.

이런 사람은 대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까? 이정도 사회성이면 은둔형이거나 소시오패스일텐데. 대체 평소에 얼마나 열등감과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했으면 이럴까. 아마 이게 한번은 아니겠지. 어떤 결핍을 가지면 이 글을 보고 화가 날 수 있을까?



연민에 과몰입해 악플러를 이해해보려는 흐름으로 갈 뻔한걸 머리채잡고 막아냈다.

그 후 마지막으로 다녀간 감정은, 인정하기 싫지만 두려움이다.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서 평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을거라는 불편한 진실. 그게 나의 지인일 수 도 있다는 합리적 추측.  기본적으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니 괜히 논쟁을 했다가 당할 법한 봉변을 나열해보자니 끔찍했다.



그렇게 응대하지 않고 무시한 나의 선택을 다행이라 되뇌이며 휘몰아치는 사고는 일단락 되었다.

여전히 하루 내내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은 함께했지만 말이다.




'악플이 문제다' 한창 이야기가 많았을 때 부터, 짐작수준이었지만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 한마디가 가지는 치명적인 유해함을 말이다.


답답한 건, 이게 참으로 문젠데 해결할 도리가 마땅히 없다는 거다.

말의 의중과 재료는 온전히 사람의 재량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사람의 발화를 무조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면 방법이 없어보였다.

유튜브 키즈채널의 댓글창이 막히고, 몇몇 포털 사이트에서도 기사에 댓글란을 없애기 시작한 것 처럼 말이다.



악플을 근절하는 일은 온전히 사람에게 달린일이라 어렵다.

이번 일을 겪으며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인플루언서는 많은 이들의 눈에 닿는 것을 숙명으로 한다.

대부분의 믿을 만한 사람 사이에 껴있는 소수의 유해한 사람에게도 당연히 닿게 될 터.

그렇게 악플은 인플루언서가 감당해야할 덕목(?)으로 자리한지 오래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말이다.



인플루언서를 꿈꾸기 위해선, 욕먹을 용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세상의 이치가 야속하다.

잘못했으면 욕먹어 마땅하지만, 잘못한게 없는데도 욕을 먹는건 다른 얘기다.

상식을 벗어난, 무논리의 맹목적인, 의도가 다분한 욕은 감수해야할 욕이 아니다.

인플루언서의 악플은 현상이지, 당위가 아니다.




오늘은 악플을 받아서 아프고

꿈이 새삼스러워져 조금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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