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의 불확실성을 대하는 방법
수업이 끝나고 반친구와 카페에 와서 복습을 한다.
친구는 처음보는 단어들에 형형색색의 펜으로 과감하게 필기를 한다.
헌데 내 책은 온통 검은색으로 된, 시시하기 따로없는 필기로 가득차있다.
친구처럼 나도 색을 좀 써볼까 형광펜을 만지작하다가 이내 다시 필통에 들여놓는다.
난 아무래도 연필이 좋다.
난 마구써도되는 연습장이 아닌 이상, 모든 메모와 필기를 연필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중요할거라는 확신이 드는 부분의 경우에는 빨간색 펜으로 소심하게 표시하긴하지만, 그 외 대부분은 모두 지울 수 있는 연필필기다.
바로 지울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이 있다.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니까
아무것도 적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다르게 필기할 수 있으니까.
책과 노트에, 그리고 내 학습효율에 어떤 타격도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비단 필기를 할 때만 시행착오를 신경쓰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중에 번복이 가능한지 꼭 확인을 한다.
혹여나 그게 어려우면 선택을 포기하거나 확신이 들때까지 미루는 편이다.
이건 내가 실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심리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일까.
우선 나를 믿지 못한다.
난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동시에 그로인해 일이 그르쳐지는데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또한 나의 덜렁미를 고치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시도를 안해본것은 아니지만 이또한 내 고유의 모습이라 생각하기에(또 더 많은 경우 마음에 들어하기에) 큰 스트레스를 줄정도로 문제삼지 않는다.
나의 문제(?)를 고칠 수 없을때 내가 오직 관할할 수 있는 부분은,
과오가 생겨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안전망을 잘 쳐두는 것뿐이다. 혹은 돌이킬 수 있는 상황에만 시도하거나 말이다.
그 안전망 속에서 내 선택과 생각, 행동과 말은 비로소 자유를 갖게된다. 누군가의 눈에는 더 과감해지고 탁월한 실행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해주는게 바로
'돌이킬 수 있는 환경'을 지향하는 습관이다.
글자를 쓰다가 잘못쓸 수도 있고
잘썼지만 갑자기 선생님이 필기내용을 수정할 수 도 있다.
불확실성은 언제 어디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이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내 삶에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나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번외
물론 이 방식이 온전한 내 자유의지 였느냐고 묻는다면 백프로 떳떳하지 못하겠다.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놓을 성미와 능력이 되지 않아서 취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대처였을 수 있다.
그런만큼 연필로 필기할 때 단점도 물론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필기 결과물의 효용에 있다.
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명확한 내용전달, 중요도 표시, 예외 사항 언급 등등
뭐가 되었든 그 본질에 충족하는 필기를 오직 단색의 연필만 사용하며 실현할 수 있는가?
나는 괜찮을지라도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하여 내방식은 모두를 위한 방식이 되진 못할 수 있다.
누가봐도 완벽한 영양분 덩어리의 결과물은 나에게 만족과 효과를 줄 뿐아니라, 남에게도 같은 가치를 갖는다.
그말은 즉슨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놓치게되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라는 점을
쓴 마음으로 고백하는 바이다.
허나 그또한 내게 그리 큰 타격이 아니라는 점을 비루하지만 밝혀본다.
나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별관심이 없는 마이웨이 파인것을 고려하면
그 공유가능성의 가치가 어려울 뿐더러 그리 탐나지 는 않는다.
별 수 있겠는가.
돈은 못벌더라도 생긴대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