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래는 내가 소설 공모전으로 제출했던 소설이다. 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은 고정되어 있기에, 나의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비록, 소설 수준이 처참해서 숨겨두고 싶지만 그래도 나의 이런 글을 기록해두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조심스럽게 올려본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카페에 앉아 한 모금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저 남자는 후자의 모습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조금 심기가 불편한 얼굴과 시대에 맞지 않는 앳된 옷차림을 한 그 남자의 이름은 수혁. 20살이다. 10대의 삶을 우여곡절 끝에 마친 수혁에게 20대의 삶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20살과는 달랐다. 20살이면 대부분 푹 빠져버리는 술에도 흥미가 없었으며, 흔히 불리는 ‘오티’, ‘개총’, ‘MT’는 거짓을 꾸며내어 참석을 모두 거절했다. 그런 그가 최근에 흥미를 느낀 관심사는 다름이 아닌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 남자는 객관적으로 불행했다. 그의 인생을 대략 살펴보면 이렇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여 아버지의 손에서 컸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가정적이거나 따뜻하지 못했다. 이혼한 후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14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어린 동생과 자신을 위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쌓여있는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나서며 닥치는 데로 돈을 벌었고, 다른 집 불이 모두 꺼질 때쯤 수혁은 녹초가 되어있는 채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2살 차이의 동생은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가 아껴둔 돈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입시를 준비했고, 결과적으로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하였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많은 걸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에, 수업 이외의 시간은 돈을 버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신을 탐구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다. 그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치도 알 수 없었다.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구경하는 그 남자는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자신도 봄눈 같은 벚꽃이 되어 만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귀신에 홀린 듯 학교 근처의 문구점에서 눈에 띄는 빨간색 5000원짜리 작은 양장 노트를 구매했다. 사야 할 물건이 생기면 2주일은 고민하고 그마저도 포기해 버리는 그에겐 다소 특이한 날이었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카페에도 갔으니 더욱 의아할 만하다.
일을 끝내고 비어 젖은 채 집에 돌아온 수혁은 몇 시간 전 구매한 노트를 꺼내 자신의 생애를 끊임없이 적기 시작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교양교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양장 노트에 자신의 물방울이 떨어져 잉크가 번지는지도 모른 체 자신의 찬란했던 인생들을 적어 갔다. 생각해 보면, 그의 대학교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특별했지만, 유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자니 스스로가 너무 처량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 인생 재밌네.”
잠이 오지 않아 누워만 있던 그의 동생이 문밖에서 나는 형의 기이한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수혁은 휘갈긴 노트의 내용을 모두 읽어보곤, 자신이 너무 불행한 가정만 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앞날이 항상 지옥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인생을 돌아보니 의젓한 어른으로 성정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헌신 덕분에 가정은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남자의 아버지는 수혁을 보며 술을 끊고,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 누구보다도 멋진 인생이었다. 그는 모든 찰나의 순간, 주관적으로 행복했다. 수혁은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노트를 펼치고, 두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그러나, 불행과 행복은 어쩌면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두 얼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