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도망가지 마.. 아니 도망가..

1화 | 에세이

by 이태민

“반장, 잡아와.”

“네.”


그렇게 반장은 그 친구를 잡으러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맨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만..!”


그 친구가 뛰자 반장도 뛰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 다니던 동안 반장, 부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다. 교실 문을 열고 뛰었던 그때도 나는 반장이었다.


내 성격도 그렇지만 나는 반장이기에 항상 모범을 보이고자 노력하였다. 반장이라 함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날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를 수 없었다.


사건은 이러하다. 타종 소리가 경쾌하고 울려 퍼지고 수업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선생님이 화를 내셨다. 누가 방금 쌍욕을 한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친구를 지목했다(이 친구를 ‘K’라고 앞으로 지칭하겠다.). K가 방금 욕을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러나 K는 결백을 주장했다. 5분간의 실랑이 끝에 선생님은 그 쌍욕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반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나는 그날따라 책상 서랍에 책이 많아서 교과서를 찾는 도중에 발생한 사건이라 듣지 못하여 후자에 투표했고, 결과는 팽팽했다.


당연히 모두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결과를 보고 당황해하셨다. 신기하게도, K의 주변 친구 대부분이 들었다고 손을 든 것이 아니고, 좌석의 거리와는 상관관계가 없이 들었다, 못 들었다 표가 갈린 것이다.


그렇게 계속 K와 선생님의 말싸움 끝에, K가 짐을 챙기더니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찌나 빠르던지, 바로 잡으러 가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듣고 교실 문을 열자마자 핸드폰 가방이 있는 복도 중앙 교무실에서 핸드폰을 꺼내 온 K와 마주쳤다.


그렇게 ‘런닝맨’을 연상케 하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최선을 다해 뛰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5층에서 점점 층이 내려갈수록, 나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친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이 된 것은 아니었다. K는 ‘자유’라는 단어와 가장 친했다. 대부분의 억압, K의 입장에서 학교라는 억압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나와는 상극인 친구다. 난 굉장히 학교를 좋아하고, 잘 다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이 사건 때문에 단순히 교실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그만 도망가라고, 멈추라고 말했지만, 나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 낮추었다. 그렇게 1층까지 내려와 중앙현관을 벗어나 교문 근처까지 달려간 K를 따라갔다. 내가 교문에 도착했을 때, K는 교문을 막 벗어났다.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폭만 남겨둔 교문 울타리를 두고, 나와 K가 마주했다. K와 대면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잘가. 연락하고.”

“그래.”


그렇게 나는 피식 웃으며 K를 보내주었다. 물론 K는 다음날(혹은 그다음 날?) 학교에 왔다. K가 떠나는 모습과 내가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두 갈래의 길을 각자 걸어가는 그림이 연상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반장의 모습으로 교내 관리 요원분과 당시 나의 소속이었던 학생안전부에 상황을 보고하였다.


내가 반장을 하면서 꽤 괜찮은 선택을 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을 한 부분은 있지만, 그 당시 내가 짧은 순간 최선을 다해 고민해서 결정했던 선택이었고, 지금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K의 선택, 그리고 나의 선택이 다소 감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선 나는 K의 선택을 존중했다. 내가 이해할 수준의 선택을 한참 벗어났지만, 무언가 존중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아니, 존중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K가 한 행동이 삶의 외침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나마저 K를 억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의 화신으로 죽을힘을 다해 행복하게 살기를 K에게 당부했다.


이 이야기와 다소 거리가 있지만, 우리가 무언가 도전을 하려면 강력한 외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다 말려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겠다면, 무작정 저질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폭발적인 순간 혹은 선택이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지도,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순간으로 인생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후의 책임은 자신의 몫이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 또한 당부하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큰 선택, 조심스럽게 예를 들자면 퇴사와 같은 중대한 선택에 ‘도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용감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난 오히려 더 응원해 주고 싶다.


아까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이 사건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K와 통화를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 사건이 생각나 K에게 그때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살짝 나를 놀라게 했던 K의 답변은 이러했다.


“당연하지. 그때 네가 나를 놓아준 것도 기억하고. 고마웠어.”


내 마음이 자유의 화신에게는 유리창처럼 훤히 보였나 보다. 그 답변을 듣고 뿌듯하면서도 머쓱했다. K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K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갔다. 물론 K가 내가 믿는 윤리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기에 항상 쓴소리를 하긴 했지만, 묘하게 응원하고 싶은 미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아 모르겠지만, 나는 K 혹은 K와 같은 큰 선택을 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옳다는 것이 명확하진 않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괜찮은’ 선택을 하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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