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즘 들어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어린이들을 보기 힘들다. 물론, 전보다 출산율이 눈에 띄게 급감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오래 교직 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뵐 때면 이 지역은 비교적 학령인구가 덜 감소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학원가 주변과 pc방에 가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으면 10개의 손가락으로 접거나 펴서 충분히 대답이 가능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 내 또래들과 함께 놀았던 곳은 항상 놀이터였다.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글짐’, 정전기와 마찰 때문에 화끈하게 엉덩이가 불탈 수 있는 ‘미끄럼틀’,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기 제일 좋은 ‘그네’가 있었다.
‘탈출’이라고, 놀이터에서 하는 전통적인 놀이가 있다. 도망자들이 놀이터에 자리를 잡으면, 눈을 감은 술래가 오직 감각에만 의존해서 도망자들을 잡아내는 것이다(‘왕눈이’, ‘실눈’ 등 술래를 위해 잠시 눈을 뜨게 하는 찬스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의 또래들은 배우 ‘톰 크루즈’의 자식인지 의심되곤 한다. 학부모가 직접 목격한다면 경악할 정도로 위험천만하게 술래를 피해 높거나 폭이 좁은 곳에 숨어있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올라가는지 내 눈을 의심하며 경외심이 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항상 안전을 중시하라는 교육을 받았기에, 따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얌전하게 숨어있거나 주로 가장 먼저 탈락하는 편이었다. (놀이터에선 강한 이들만 살아남았다.)
길거리에 있는 놀이터에는 항상 아이들이 북적북적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나는 2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오락 수단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핸드폰, 패드, 컴퓨터만 있으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영상 콘텐츠, 예를 들면 유튜브, 넷플릭스 등 너무 잘 되어있고, 게임도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다양하게 존재한다. 아이들을 위한 주력 콘텐츠도 많이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학구열이다. 나는 ‘7세 고시’ 이야기를 듣곤 경악했다. 한창 뛰어다닐 나이에 시험을 보고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한번은 대학교 교양 교수님에게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님이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고민이 있냐고 물었더니, 인생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다크초콜릿을 한 조각 먹는 듯한 씁쓸한 이야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 차이는 점점 더 가속화된다는 생각과 살아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어렸을 땐 이해 못했던 어른들의 ‘그땐 그랬지~’가 이제는 충분히 공감된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같이 보낸 또래들을 만나면, 추억을 아껴둔 초콜릿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 하나하나 먹는 듯 즐기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나이 차가 조금 나기 시작하면, 공감하기 힘든 지점들이 많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한편,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참 부담스럽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에 쏟아붓는 것에 관한 판단을 떠나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에서 사회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아무튼, 놀이터는 나에게 추억의 장소이다. 친구가 놀이터에서 그네 타다 가자며 놀이터로 향하는 모습에 무슨 우리 나이에 그네를 타냐며 피식 웃으며 따라가던 1년 전 어느 날을 추억하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