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화된 삶에 대하여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적인 고민

by kyo
지속 가능한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

요즘 내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두는 "지속 가능하게 행복한 삶"이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들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로부터 행복감을 느끼는지부터 찾아가며 지속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노력하려는 중이다.


이전에 썼던 글 중 이런 것들을 나름의 아주 간단한 방정식으로 표현해본 적이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늘 내게 행복을 주는 것들의 종류가 바뀌기도 하고 각각으로부터 얻는 행복의 양이 달라지기도 할 텐데, 그 요소들을 잘 찾아내고, 늘 고정적으로 행복을 주는 "C"라는 상수를 잘 만들어가자는 것이 골자였다.


(관련 글은 여기에 : https://brunch.co.kr/@txh/4)


그러면서도 사실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었는데, 그럼 대체 내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늘 선택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에 기인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런 것들을 정의하지 않고 막연히 행복, 행복, 행복, 단어들만 나열했으니, 언뜻 덧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질문은 아니었다. 늘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할 때 정말 행복할 수 있는지 늘 자문했지만 답을 온전히 찾았다고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행복할 방법을 탐구하는 것 말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를 탐구해보는 것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온전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요새 하루하루가 참 무난하고, 그리고 순간의 기쁨들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행복하다. 그럼에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과연 이 행복이 지속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키워드는 주변화된 삶

그러다 요즘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한 꼭지로 "주변화된 삶"이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이루는 다양한 형태들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주어진 환경에, 타인에게, 어쩌면 운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상황애 내맡겨 버린 채, 주체성이 결여되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넌지시 던져본다.


"주변화"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 어떤 사회나 집단에 속하여 있으면서도 그 속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게 되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두 꼭지를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을 것 같다.

1) 주어진 환경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결여: 주어진/부여된 상황을 주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가

2)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판단을 하는 태도: 스스로 수립한 판단 기준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가

결국 주변화되지 않은,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행복의 근본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지금 누리는 삶의 형태를 구성하는데 내가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최선을 다해 돌파해가며 이루어냈다기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의 작고 작은 선택들을 해가며 운 좋게 얻어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내게 주어진 상황이 바뀌면(예를 들여, 부득이하게 회사를 옮겨야 하거나, 나이가 들어 건강이 헤쳐지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어떤 어려움을 겪거나) 나 스스로 가장 최선의 답을 찾아 노력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해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혹은, 그런 상황을 내 의지로, 내가 세운 목표에 기반해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혹은 열정이 있을까?



그렇기에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이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 삶을 관통하는 가치관에 기반한 판단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나는 평균 이상의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았다"라는 느낌이 가득한 채 내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는, "주변화됐다"는 느낌이 드는 한, 불안감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은 답을 적어 내려 가기 위해 써 내려간 글이 아니었다. 복잡한 생각의 타래들을 풀어가기 위한, 그저 작고 소소한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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