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음지와 양지는 존재할까?
지하 아이돌을 보고 왔다 – 과연 음지와 양지는 존재할까?
지하 아이돌을 보고 왔다. 화려한 LED 스크린도, 거대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좁은 골목 끝, 건물 지하의 허름한 공간. 몇 개의 조명과 최소한의 음향 시설이 전부였다.
그곳에는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아저씨들도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 공간에 모였다. 자본이 검열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무대를 보기 위해.
나는 서브컬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했다.
스트리트 패션이 힙합과 함께 마이너 문화로 자리 잡았다가, 어느 순간 메이저로 스며든 걸 봤다.
슈프림과 스투시는 한때 거리의 언더그라운드 감성을 대표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골목 지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도 언젠가 메이저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개그맨 김대희는 지하 아이돌 기획사를 인수했다.
유튜버 김계란은 QWER을 성공시키며 “덕질할 게 없는 시대”에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더 이상 마이너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 문화를 소유하고 재가공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음지와 양지의 경계는 어디인가?
요즘 인터넷을 보면 “이건 음지다, 저건 양지다” 하는 논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문화는 “서브컬처”라고 불리고, 어떤 문화는 “주류”가 된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스트리머가 소규모 방송을 하면 ‘언더그라운드 감성’이라 불린다.
하지만 후원금이 늘어나고, 기업 광고가 붙으면 “돈 냄새 난다”는 비판이 따라온다.
아이돌이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면 “진짜 음악 하는 사람”이라 찬양받는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면 “기획형 아이돌”이라며 평가절하된다.
이쯤 되면, “음지와 양지”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음지에 있는 것들이 양지로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서브컬처”는 단지 돈이 안 되는 단계에 있는 것들인가?
음지가 메이저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사람들은 스스로 **“우리는 마이너 문화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그 문화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순간,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흥미를 잃는다.
인디 음악이 유명해지면 “이제 감성이 죽었다”고 한다.
서브컬처 브랜드가 뜨면 “예전 같지 않다”며 손절한다.
작은 유튜버가 조회 수를 얻으면 “초심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아이러니하다.
이들은 정말 음지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단지 “나만 아는 세계”였다는 자기만족을 소비했던 걸까?
지하 아이돌도 언젠가 메이저가 될까?
김대희의 엔터사 인수, 김계란의 QWER 성공.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마이너가 메이저로 편입되는 과정의 일부다.
지하에서 공연하던 아이돌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방송에 나오고, 대형 기획사에 픽업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지만, 진짜 그렇지 않았을까?
음지는 결국 양지가 될 운명을 타고났고, 메이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마이너를 탐색한다.
지하 아이돌도, 언젠가 어느 위치에선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진짜 마이너”를 찾는 사람들이 등장하겠지.
음지와 양지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 달라지는 **“내가 소비하고 싶은 감성”**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