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사람, 보여지는 사람, 그리고 행복의 알리바이

"기억인가, 전시인가?"

by 김장혀기

어제 길을 걷다 인생네컷 가게를 지나쳤다.
문 앞 벽에는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그 사진들은 아마도 소중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들은 정말 ‘행복해서’ 남긴 걸까?"
"아니면, 행복해 보이고 싶어서 남긴 걸까?"


마치, SNS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처럼.
어떤 사람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올리고,
어떤 사람은 보여지고 싶은 것을 올린다.
이 둘은 닮은 듯 다르고, 다르지만 어딘가 겹쳐 있다.



보여주는 사람, 보여지고 싶은 사람

� 보여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한다.
타인의 반응보다는 **‘나를 위한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다.

� 반면, 보여지고 싶은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연출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정제된 이미지들을 SNS에 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 두 가지를 오간다.
어떤 날은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어떤 날은 ‘보여지고 싶은 사람’이 된다.



행복의 알리바이 – 우리는 왜 사진을 남기는가?

<행복의 알리바이: 사진(しあわせのアリバイ~写真~)>
이 일본 영화 제목을 본 순간,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복의 알리바이."
뭔가 묘하게 와닿지 않나?


✔️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다.
✔️ 하지만 때로는 행복해 보이기 위해 기록하기도 한다.


SNS에 올리는 ‘행복한 사진’들은 진짜 행복의 기록일까?
아니면, 행복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알리바이일까?

사진 속에서 우리는 웃고 있지만,
그 사진을 찍기 전에는 사실 어색한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카메라를 향해 자연스럽게 웃으려 노력하지만,
그게 과연 진짜 감정의 순간일까?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복을 연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네컷, 기억과 욕망 사이에서

길거리에서 본 인생네컷 사진들.
그건 단순한 추억일까, 아니면 하나의 ‘연출된 장면’일까?

가만 보면, 사람들은 정말 ‘우리끼리만의 추억’이라면 사진을 벽에 붙이지 않는다.
지갑 속에 넣어두거나,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해두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가게 벽에 붙여둘까?


✔️ "우리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 "그리고… 누군가가 봐줬으면 좋겠어."


이 두 감정이 동시에 공존한다.
나만 기억하고 싶은데, 또 누군가는 봐줬으면 좋겠고.
이건 마치, SNS에 사진을 올려놓고 ‘안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는 모두 관음증적 존재다

보여주고 싶어 하면서도, 보여지는 걸 경계하는 이 이중적인 감정.
사실 이건 단순한 SNS 문화가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존재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개념을 말했다.
원형 감옥에서 죄수들은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모른 채, 스스로를 감시한다.
결국 감시자는 보이지 않지만,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죄수들을 통제하는 도구가 된다.


✔ SNS는 현대판 판옵티콘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또한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관리’하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보여지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내 피드는 누군가가 ‘이상적으로 보길’ 바라면서 올린다.
결국 우리는 ‘보고 싶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보여지고 싶은 사람’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 올린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인지, 아니면 ‘연출된 나’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 나는 내 순간을 남기는 중인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위해 연출하는 중인가?
� 내가 올린 이 사진은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보여지고 싶은 나’를 위한 것인가?
� 행복의 기록인가, 행복의 알리바이인가?


질문은 단순하지만, 대답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기억’과 ‘관음증’ 사이에서 살아간다.
나만 알고 싶은 순간을 남기면서도,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가진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어쩌면 SNS는 그걸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적어도, 그림자를 보고 ‘그게 전부’라고 착각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
SNS 속 모습은 단지 빛에 비친 한 조각일 뿐이니까.



�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우리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 하면서도, 기억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남긴 행복이 ‘행복의 기록’인지, ‘행복의 알리바이’인지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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