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감정을 대하는 태도
요즘 사람들은 이별 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전남친은 죽었다고 생각해."
더 이상 연락할 수도, 볼 수도 없다고 여겨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논리다.
강한 단절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은 계속 과거에 머물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정말 이별이 ‘죽음’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영화 멜로무비에서 배우 고창석은 이렇게 말한다.
“상실의 고통이란 게 말이다.
이게 처음에는 정신없어서 잘 몰라요.
그러다가 절실하게 필요한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더라.”
이별도 그렇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진짜로 **‘이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 혼자서 밥을 먹는데, 더 이상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
✔ 카톡 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낼 수 없다는 걸 실감할 때.
✔ 함께 보던 드라마의 다음 회차가 올라왔는데, 그 사람과 같이 볼 수 없다는 걸 알 때.
그제야, 이별이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전남친은 죽었다고 생각하라.”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사실 이건 상실의 고통을 빨리 받아들이라는 조언일지도 모른다.
이별을 ‘되돌릴 수 없는 일’로 만들어야
자꾸 기대하고 미련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 너무 미련을 갖고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끝났어. 다시 돌아오지 않아."
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데 도움이 된다.
✔ 계속 상대에게 연락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않잖아."
라는 현실적인 제한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이별이 죽음과 같은 감정일까?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를 정말로 건강하게 이별하게 만들까?
드라마에서 형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다.
절대 다시 볼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들은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이별은?
이별한 사람은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이 때때로 더 아프게 느껴진다.
✔ 그래서 때로는 죽음보다 이별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 차라리 이 사람이 세상에 없었다면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별을 죽음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힘들어진다.
고창석의 대사처럼,
"고통이 오는 순간은 뭐 어쩔 수 없어.
느껴야 돼.
그때 너 혼자 있지만 마라."
맞다. 그냥 충분히 아파해도 된다.
억지로 참을 필요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필요도 없다.
이별의 슬픔은 슬픔 그대로 느껴야 한다.
이별을 한 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빨리 잊어야 한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기억을 억지로 지우려고 할수록,
그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 이별의 고통을 인정하자.
✔ 그 사람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자.
✔ 하지만 그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잊으려고 애쓰지는 말자.
이별을 통해 내가 배운 것,
함께했던 순간들,
그것들은 억지로 지울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지고,
그 사람은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기억을 미소 지으며 꺼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별은 죽음이 아니다. 충분히 아파해도 된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다시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