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두 번째 삶의 자기소개

by 건강한 오후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명함첩을 꺼내 한 장씩 천천히 찢었다.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며 명함첩을 손에 쥐었다. 종이가 갈라지는 소리는 작았으나 단호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하얀 조각들을 바람이 데려갔고, 콘크리트 바닥에 25년의 무게가 흩어졌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그저 낯설 정도로 가벼워진 빈 손만 남았다.


그날 밤, 혼자 책상 서랍을 열었다. 고무줄에 묶인 명함 백여 장이 누렇게 익어 있었다. 종이는 빳빳했으나 모서리는 말려 있었다. 박혀 있던 은박 로고는 빛을 잃었다. 손끝에 닿는 질감이 서늘했다. 그것은 한때 나의 이름이었고, 나를 세상과 구분 짓던 가장 확실한 경계선이었다.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상무'라는 직함 아래 내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 얇은 종이 조각이 나를 증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을 건넬 때, 나는 비로소 존재했다. 신입사원이 내 명함을 받으며 허리를 굽히고, 거래처 과장이 직함을 확인하고 말투를 바꿀 때, 나는 그들보다 30센티미터 더 큰 사람이 되었다.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 세상은 명확한 위계로 정렬되었다.


타인의 시선들이 모여 나의 골격을 이루었다. 명함이 곧 나였다. 직함이 내 목소리에 낯선 무게를 실어주었다. 나는 그 무게에 기대어 25년을 살았다. 회의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말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젊은 직원들은 내 눈을 피했다. 내가 말하면 공기가 멈췄다. 명함첩이 두꺼워질수록 나는 단단해진다고 믿었다.


퇴직 후, 마트 주차장에서 후배와 마주쳤다. 10년 넘게 같은 팀에서 일했던 김 부장이었다. "상무님!" 그가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 호칭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어, 자네. 잘 지내나?" "네, 요즘 어디 계세요?" 질문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에게는 '어디'가 있었지만, 내게는 '어디'가 없었다. "응, 좀 쉬고 있어." "아... 네." 그가 시계를 보았다. "죄송한데, 거래처 미팅이 있어서요." 그는 카트를 밀고 떠났다. 그의 장바구니에 담긴 선물용 과일 세트를 보며,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우유 한 팩을 내려다보았다.


명절 가족 모임에서 손자가 물었다. “작은할아버지 회사 어디 다녀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수가 대신 말했다. “작은할아버지 지금 쉬고 계셔.” 손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현직에 있는 다른 작은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는 손자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 나는 거실 구석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명함이 없는 사람은 대화에 낄 자격도 없었다. 묻는 이도, 대답할 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 책장을 바라보았다. 먼지 쌓인 『모비 딕』을 꺼냈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첫 문장에서 오래 멈춰 섰다. 이슈메일은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다. 에이허브 선장이 흰 고래에게 끌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 때, 그는 쿼커그의 관 뚜껑에 매달려 살아남았다. 죽음의 상징인 관이 생존의 부표가 된 것이다. 나에게는 퇴직이라는 절벽이 그러했다. 배도, 동료도, 돌아갈 목적지도 잃은 채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 있었다.


서재 구석에서 대학 시절 쓰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누렇게 바랜 첫 페이지에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답란에는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물두 살의 나는 그렇게 단순했고, 그 꿈을 이뤘다. 그런데 꿈을 이룬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속 커서가 깜빡였다. 첫 문장을 썼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처음에는 제목도 없이 썼다. "상무 김OO 씨는 오늘..." 자꾸만 회사 보고서처럼 써졌다. 결재란을 의식하고, 상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 25년의 습관이 손가락 끝에 남아 있었다. 문장 끝에 자꾸 "~하였습니다"가 붙었다. 보고 대상이 없는데도 존댓말이 나왔다. 지우고 다시 썼다. "오늘 비가 왔다. 우산이 없었다." 중학생 일기 같은 문장이었으나, 적어도 내 목소리였다. 25년 동안 쓴 문장 말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나의 문장이 필요했다. 한 줄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손이 떨렸다. 25년 동안 수없이 결재 서류를 만들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아있는 떨림이었다.


한 달 뒤 글을 올렸다. 화면 속 숫자가 요동치고 첫 댓글이 달렸다. "공감합니다." 단 다섯 글자였으나 상사에게 받은 "수고했네"라는 말보다 뜨거웠다. 누군가 내 직함이 아니라, 내 문장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내 명함이 아니라, 내 존재에 붙여진 새로운 호칭이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 순간, 나는 이슈메일이 되었다. 직함을 던져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이름. 그러나 나는 여전히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댓글을 기다렸다. 글을 쓰는 나 역시 누군가의 '공감'에 기대어 있었다. 명함은 사라졌으나 타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슈메일도 결국 누군가의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되지 않으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그는 왜 자신만 살아남았는지 평생 설명해야 했다. 생존자의 의무는 증언이다. 나 역시 25년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직함의 허상을, 권력의 무게를,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진 한 남자를. 표류는 자유가 아니라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표류라는 것을.


내일 아침에도 나는 책상 앞에 앉을 것이다. 명함은 없으나 화면 속 커서가 다시 깜빡인다. 작살 대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이것이 자유인지 또 다른 표류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다. 그 목소리가 구원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나는 기꺼이 이 바다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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