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나는 이 길을 걷는다. 목욕탕 가는 길. 동네 목욕탕은 한때 아버지와 내가 함께 걷던 곳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토요일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를 지나고, 철물점 모퉁이를 돌면 목욕탕이 나왔다. 그때의 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탈의실 풍경이 떠오른다. 옷을 벗으면서 아버지의 등을 본 순간이 기억난다.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날.
검게 그을린 어깨. 굵고 단단한 근육. 허리춤에 희끗희끗 솟아난 잔털. 그 등은 내가 아는 아버지의 전부를 담고 있었다. 어깨 너비. 목덜미에서 허리까지 이어지는 척추의 선. 왼쪽 어깨죽지 아래 희미한 상처 자국.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 있었을 그 흔적.
"세게 밀어도 돼."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때를 밀었다. 거친 타올에 때가 묻어 나왔다. 검은 때가 말려 올라갔다. 나는 더 힘을 주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나도 말이 없었다. 온탕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만 들렸다.
등을 다 밀어드리고 나서 아버지가 물었다. "다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네 등 밀어줄게."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물 위로 김이 피어오르고, 타일 벽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비누 냄새와 따뜻한 습기.
1988년 가을이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함께 간 목욕탕. 나는 스물둘이었고, 아버지는 쉰여덟이셨다. 그때 아버지의 등은 더 이상 단단하지 않았다. 살이 빠져 뼈가 드러났고, 피부에는 얼룩덜룩 반점이 생겨 있었다.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때를 밀었다. 허리를 숙인 아버지의 목덜미가 가늘어 보였다.
그날, 아버지는 내 등을 밀어주려 했다.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다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등을 밀어주지 못했다. 기력이 없다며 먼저 옷을 입고 탈의실에서 기다렸다.
1989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뒤로 36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쉰아홉이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었을 때보다 한 살이 더 많다.
나는 목욕탕 앞에 섰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김이 솟아오르는 탈의실이 나올 것이다. 1층 탈의실 왼쪽 구석의 낡은 나무 의자. 천장의 형광등. 벽에 붙은 때밀이 가격표. 37년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풍경.
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없다. 함께 온탕에 몸을 담그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던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물을 끼얹던 그 자리. 아버지가 옷을 입고 기다리던 탈의실 의자.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토요일 아침, 혼자서 목욕탕에 간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그대로다. 철물점도 그 자리에 있다. 목욕탕 간판의 '목'자는 여전히 반쯤 꺼져 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물에 등을 대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다. 거칠지만 따뜻했던 그 손. 물 위로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 했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도 없는 온탕에서.
가을은 내려놓음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듯 우리도 무엇인가를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내려놓음은 잊는 것이 아니다. 더 또렷하게, 한 조각도 흩어지지 않게 기억하는 것이다.
계절은 기울지만, 사랑은 기울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목욕탕 앞에 선 나는 안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떠나간 36년이 아니라, 지금이다.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이 길을 걸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그리고 목욕탕에 가서, 그의 등을 밀어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거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