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1862년, 진주의 가을
그해 가을, 진주 땅의 농부 하나가 낫을 들었다. 탐관오리의 수탈로 올해도 수확의 절반을 빼앗긴 터였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은 누구의 것인가. 저 멀리 관아 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기도 시간이었다. 그는 낫을 내려놓지 않았다. 기도는 무릎 꿇는 자의 몫이었고, 그는 더 이상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가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향하던 순간, 한여름의 끈적한 무더위가 언제 물러갔는지도 모르게 뺨을 스치는 바람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결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아직 해는 중천에 있고 아스팔트는 온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분명 다른 계절에서 온 전령이었다. 올해의 가을은 여름을 칼로 끊어내듯이 들이닥쳤다. 나는 그렇게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프랑스인들은 해 질 무렵을 'l'heure entre chien et loup', 즉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황혼이 내려앉으면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형체가 온순한 개인지, 사나운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익숙함과 낯섦, 안전과 위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나는 이 가을, 나를 물어뜯을 늑대와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은퇴 후 찾아온 고독일 수도 있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무의미함일 수도 있고, 책 한 권 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늑대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2. 밀레의 만종 - 땅을 파는 자와 낫을 든 자
황혼의 들판에 선 사람들을 떠올린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광활한 들판, 하루의 노동을 마친 농부 부부가 저녁 기도 종소리에 고개를 숙인다. 괭이는 땅에 박혀 있고, 바구니에는 감자 몇 알. 하늘은 어스름 속으로 스러져 간다.
그 무렵, 바다 건너 조선의 진주 땅에서는 농민들이 낫을 들었다. 1862년 진주 농민봉기, 삼정의 문란으로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하며 개혁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같은 도구, 다른 몸짓. 밀레의 농부는 괭이를 땅에 꽂았고, 진주의 농민은 낫을 치켜들었다. 하나는 땅을 파는 일이었고, 하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일이었다. 하나는 고개를 숙였고, 다른 하나는 고개를 들었다.
황토빛 대지와 차가운 하늘 사이, 부부가 서 있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기도 후에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다시 괭이를 들었을까, 아니면 낫을 들었을까.
역사는 말한다. 밀레의 농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진주의 농민은 패배했다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들고 있는가.
3. 남강변을 걷다 - 함성이 흐른 강물
해 질 녘 남강변을 걸었다. 강물 위로 부서지는 노을은 황금빛과 보랏빛으로 번지며 하루의 끝을 알렸다. 자전거를 탄 학생들, 조깅하는 중년, 강변에 앉아 맥주를 나누는 연인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황혼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은퇴 후 줄곧 혼자다. 집에 돌아가도 혼자고, 카페에 앉아도 혼자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도 조회수는 두 자릿수를 넘지 않는다. "글 쓰는 할아버지"라고 카페 알바생이 속삭였던 날도 있었다. 나를 읽는 사람보다 오늘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아직은.
잔잔한 강물도 한때는 농민들의 함성을 품고 흘렀을 것이다. 1862년, 이 강변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낫을 들었고, 누군가는 쓰러졌고, 누군가는 도망쳤다. 강물은 그 모든 것을 씻고 흘렀다. 지금 이 강물 위로 부서지는 노을처럼, 역사도 그렇게 지워진다.
그러나 강물이 지울 수 없는 것이 있다. 낫을 들었다는 사실, 그 순간의 떨림. 그것은 강물보다 깊은 곳에 새겨진다.
나는 그들의 후예가 아니다. 같은 땅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같은 가을을 견디고 있다. 수확 없는 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의 계절.
강변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오늘도 글을 쓴다. 이것이 내 낫이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는 무릎 꿇지 않는다.
조회수는 여전히 두 자릿수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읽지 않아도, 문장은 남는다. 결국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유일한 흔적이니까.
이것이 증언이다.
4. 에필로그 - 늑대를 향해 걷다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떨어져 아스팔트에 깔린다. 차들이 그 위를 지나가며 잎을 짓이긴다.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일어선다. 카페를 나서면 텅 빈 집이 기다리고 있다. 냉장고에는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가 있고,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된다. 저녁은 5분이면 끝난다. 그러나 그 후의 긴 밤을 어떻게 견딜지는 아직 모르겠다.
개와 늑대의 시간. 나는 여전히 저 형체가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 분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주 농민들도 결국 패배했다. 밀레의 농부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아마 책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증언했다. 낫을 들고, 괭이를 꽂고, 고개를 숙이며.
나는 내일 다시 이 카페에 올 것이다.
개와 늑대를 구분하지 못해도, 나는 계속 걸을 것이다.
늑대가 나를 물어뜯는다 해도, 나는 늑대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도망가면 늑대는 평생 나를 쫓아온다.
맞서면, 늑대는 내가 된다.
그것이 나의 가을이고, 나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