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그림자에서 태어난 빛

by 건강한 오후

그날 새벽,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은퇴 후 찾아온 시간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오전.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업무. 아무도 묻지 않는 안부.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며칠째 펼쳐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첫 문장이 내 가슴을 쳤다. 감정의 결핍이 오히려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듯, 이 문장은 내가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빈 공책을 꺼내 그 문장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펜이 종이 위를 긁을 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엔 그저 글자를 베끼는 행위였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단어를 쓸 때, 손끝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엄마'를 쓸 때는 잉크가 번지듯 시선이 흐려졌다. 그 이름을 쓰는 동안, 오래전 장례식장 냉동고의 냉기가 잠시 되살아났다.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를 쓸 무렵엔, 나는 내가 카뮈의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인지 내 삶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은퇴 이후 나를 짓누르던 것은 무료함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오늘'이었는지 '어제'였는지도 모를 만큼 희미해져 버렸다.


나는 한 장을 다 채운 후에도 멈추지 못했다. 두 장, 세 장, 나는 『이방인』의 첫 부분 전체를 필사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장면까지. 내가 모방하고 있는 것은 카뮈의 문장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의 빛을 빌려 내 그림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뫼르소의 무감각 속에서 내 삶의 부조리가 투명하게 드러났다. 아침 9시, 나는 커피포트를 세 번 들었다 놓았다. 오후 3시, 핸드폰 화면을 켰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껐다. 저녁 7시, 창밖 경적 소리를 한 시간 넘게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문장 속에 있었다. 내 손으로 쓰는 순간, 나는 직시할 수 있었다.


나는 공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밝아오는 새벽 하늘 아래,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제 나는 알았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한 작가의 문장을 필사했다. 일주일째 되던 날, 카뮈의 문장 하나를 건너뛰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했다"는 문장. 그 문장이 내게는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선택했다. 2주가 지나자 필사한 문장들 사이에 내 문장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카뮈의 부조리를 필사한 후, 나는 이렇게 썼다. "오늘 나는 은퇴했다. 아니 어쩌면 그건 이미 오래전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카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나만의 빛이었다. 타인의 문장을 통과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 목소리의 윤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방은 창조의 적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의심은 남았다. 카뮈를 필사한 후 쓴 이 문장이 정말 내 목소리인가, 아니면 그저 그의 메아리인가?


필사를 마치고 며칠 후, 나는 이해했다. 모방이란 타인의 문장을 훔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눈을 빌려 자신을 보는 과정이다. 메리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모방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25년간 회사에서 상사의 문체를 익혔다. '상기 사항에 대해 검토한 결과',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음'—그들의 문장이 내 문장이 되었다. 과장의 간결함, 팀장의 신중함, 임원의 단호함.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쌓였다. 은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내 언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창조는 허공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언제나 누군가의 불씨를 이어받아 타오른다. 그런데 왜 유독 글쓰기에서만 모방은 표절이라는 낙인으로 치환되는가? 글쓰기의 세계는 복제와 검열 사이에 갇혀 있다. 평가의 장치가 빛보다 그림자를 먼저 의심한다. 하지만 표절은 출처를 숨기고 남의 것을 훔친다. 모방은 출처를 밝히고 그 위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른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문장조차 누구의 그림자인지. 내가 읽은 수천 개의 문장, 내가 따라 쓴 수백 개의 단락, 그 모든 흔적이 내 안에 쌓여 지금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순수한 창조란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모방과 창조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또 하나의 허영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은 안다. 창조는 언제나 모방의 그림자 끝에서 만나는 빛이라는 것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그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 빛이 거기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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