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 있다. 해안을 따라 기어간다. 뱀의 형상이다. 아스팔트의 검은 띠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곧은 것은 없다. 휜다. 굴곡진다.
인간은 직선을 원했다. 가장 짧고 빠른 길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 길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해안선의 굴곡을 그대로 몸에 새겼다.
숲이 붉다. 산은 가을옷을 입었다. 붉고 노란 색채들이 뱀의 검은 등을 감싼다.
뜨거운 생명들이 차가운 아스팔트의 경계를 끊임없이 침범한다. 길은 단풍을 피하지 못한다. 길은 자연의 시간에 포위된다.
을사년이 저문다. 뱀의 해가 끝나간다. 이 풍경은 저무는 을사년의 모습이다. 시간이 굴곡을 만들고, 굴곡이 시간을 견디게 한다.
도로 옆에는 바다가 있다. 푸른색이다. 수평선은 완고하다. 영원한 직선은 바다만이 가질 수 있다.
뱀의 굴곡진 몸통은 그 영원한 푸른 직선을 힐끗거리며 나아간다.
삶의 길과 같다. 우리는 바다 같은 완벽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과정은 뱀의 몸처럼 휜다. 돌아간다. 멈춘다.
나는 뱀의 형상을 본다. 은퇴 후 걸어온 길을 본다.
곧게 가려 애썼으나, 결국 굴곡졌다. 멈추고, 쉬고, 옆길로 새기도 했다. 뱀처럼 휘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 해안선에 닿는다.
굴곡은 상처가 아니다. 굴곡은 길의 증거이며, 삶의 유일한 형상이다.
뱀은 계속 기어간다. 숲은 색을 바꾼다. 바다는 변함없이 푸르다.
저 굴곡진 길을 걸어가야만, 비로소 바다의 수평선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굴곡을 인정하는 자세. 멈추지 않고 굴곡을 따라가는 힘. 그것이 저무는 시간에 내가 얻는 삶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