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둘이다. 장군대봉과 국사봉, 월아산(月牙山)이다. 달의 어금니다. 그러나 오늘은 해의 어금니다. 두 봉우리가 새벽 하늘을 가르고, 그 사이 좁은 틈으로 빛이 쏟아진다. 금호지 둑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허벅지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숨이 거칠어진다. 해가 뜬다.
물이 받는다. 금호지 수면 위로 빛이 내려앉아 길게 늘어진다. 수평선 너머 실체의 태양보다, 물 위에 번진 빛의 잔상이 더 길다. 나는 페달을 멈추고 그 황금빛 띠를 본다. 한참을.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온다. 사람들은 약진을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다만 이 새벽, 두 봉우리 사이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기 위해 페달을 밟을 뿐이다.
육십 년을 빈틈없이 살았다. 빈틈은 무너짐이었고, 정지는 추락이었다. 촘촘하게 짜인 하루 속에서 나는 숨 쉴 틈도 없이 달렸다. 그러나 지금, 월아산 앞에 선다. 두 봉우리는 제 몸을 벌려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산은 완벽하지 않았기에 빛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다섯 번의 계절을 지나며 나는 비워졌다. 진동하지 않는 휴대폰, 텅 빈 일정표, 혼자 앉는 식탁. 처음에는 공허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빈 곳으로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새벽의 찬 공기, 자전거 안장의 딱딱한 감촉, 모니터 앞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의 리듬.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감각들이 스며들었다.
월아산의 빛이 물 위로 흔들린다. 일출의 빛은 고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나아간다. 나도 그렇다. 멈춰 섰지만 정지하지 않았다. 페달을 밟고, 자판을 두드리고, 빛을 본다. 병오년도 크고 작은 파동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틈 앞에서 배운다. 빈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책상 위 모니터가 깜빡인다. 쓰다 만 문장이 빛을 머금고 있다. 나는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 두 봉우리 사이, 그 좁은 틈을 향해.
평생을 빈틈없이 살려 애썼으나, 이제야 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