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에 조형물이 붙어 있다. 초록 재킷을 입은 남자. 빨간 넥타이가 선명하다. 한 손에 가방을 들고 걷는 자세다. 조형물은 벽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는 경쾌하다. 발걸음이 살아 있다.
나는 더 이상 정장을 입지 않는다.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출근길이 사라졌다. 보고할 상사도, 만날 고객도 없다. 옷차림을 단정히 해야 할 의무가 소멸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아침 옷을 고른다. 거울 앞에 선다. 나를 위해.
쓰임이 사라진 후, 의식도 사라지기 쉽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왜 옷을 가려 입어야 하는가.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데 왜 면도를 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많은 것이 무너진다. 일상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하루가 회색으로 변한다. 의식을 잃은 시간은 방향을 잃는다.
초록 재킷. 강렬한 색이다. 빨간 넥타이. 더 강렬하다. 조형물은 색으로 말한다. 나는 회색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벽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지만, 이 색깔만은 지운다. 초록과 빨강은 고독을 견디는 장치다. 남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서 있겠다는 선언이다.
나 역시 매일 아침 나를 입는다. 초록 재킷을 입은 조형물처럼, 나는 나를 위한 색을 선택한다. 회색 트레이닝복 대신 깨끗한 셔츠를 입는다. 면도를 한다. 머리를 빗는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조형물은 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나는 그 경쾌한 발걸음을 재현한다. 벽에 박힌 자세로 존엄을 지키듯, 나는 나를 위한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의식이 나를 지탱한다. 나를 위한 의식은 두 번째 삶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