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준의 말이다. 하동 쌍계사 담장에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V자로 반복되어 물결을 만든다. 흙과 돌 사이로 기와 조각들이 엮여 들어갔다. 중앙에 연꽃 문양이 피어난다. 파편들이 모여 무늬가 되었다.
기와는 원래 지붕을 덮는 것이었다. 빗물을 막고 햇살을 가리는 쓸모였다. 그러나 깨졌다. 금이 가고 모서리가 부서졌다. 버려질 것들이었다. 그런데 담장이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지붕에서 쓸모를 다한 조각들이 담장에서 무늬가 되었다. 버려진 것이 새로운 가치를 얻었다.
무늬는 하룻밤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인이 하나씩 쌓아 올렸다. 기와 조각의 각도를 맞추고, 흙으로 고정하고, 돌을 끼워 넣었다. 시간이 쌓였다. 파편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아 전체의 무늬를 이루었다. 담장은 버려진 것들의 역사를 품었다. 쓸모를 잃은 것들이 모여 지혜의 무늬가 되었다.
은퇴 후의 삶도 그러하다. 과거의 경험들, 실패했던 순간들, 버려질 것 같던 기억들. 그것들이 지금 다시 보인다. 첫 번째 삶에서는 깨진 기와처럼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이, 두 번째 삶에서는 담장의 무늬가 된다. 시간이 쌓이고, 시선이 바뀌면, 파편이 무늬로 연결된다.
담장은 묵묵히 서 있다. 보는 이에 따라 낡은 벽이 되기도 하고, 시간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쌓인다. 나의 눈은 지금, 어떤 무늬를 읽어내고 있는가. 쌍계사 담장 앞에 서서, 나는 내 삶의 파편들을 다시 본다. 그것들이 무늬를 이루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