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를 읽고
50년 지기 친구와 국밥집에 앉아 있었다. 겨울 저녁, 창밖 가로등 불빛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밥 그릇에 어른거렸다. 친구는 새로 만난 모임 이야기를 신나게 풀었다. "이번 주말엔 산행 간대. 사람들 진짜 멋져."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데 빠지면 시간 다 날아. 그 나이에 산행은 위험하단 말이야." 친구의 미소가 살짝 굳는 걸 봤지만 모른 척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50년을 함께한 친구가 내가 모르는 세계로 떠나버릴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날 밤 책장을 뒤적이다 『그녀를 지키다』를 꺼냈다. 표지를 넘기자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킨다는 것은 잠들지 않는 것이다." 국밥집에서 친구에게 던진 내 말이 겹쳤다. 그 나이에 산행은 위험하다고. 나는 정말 친구를 지키려 했던 걸까, 아니면 내 곁에 묶어두려 했던 걸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렸다.
한 남자가 평생 여자의 석상을 조각했다는 대목에서 손이 멈췄다. 피에타. 그는 그녀를 차가운 대리석 안에 영원히 가두었다. 아니, 기억한 것일까.
문득 15년 전이 떠올랐다. 팀장이었던 나는 신입사원 김 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 검토해 줄 테니 넌 초안만 써. 실수하면 안 되니까." 2년이 지나도 그는 혼자 결재를 올리지 못했다. 회의 때마다 내 눈치를 보고, 자기 판단보다 내 승인을 기다렸다. 친절한 배려라고 믿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깨달았다. 내가 가르쳐준 것은 업무가 아니라 의존이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내가 없으면 안 될 팀을 만들어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은퇴한 지 5년째다. 회사에서 떠나자 관계들이 하나둘 멀어졌다. 직책이 사라지니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줄었다. 혼자 사는 집은 고요했다. 그럴수록 50년 우정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 친구만은, 이 관계만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 나는 모르는 사이 우정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다. 차가운 수도원 돌벽 앞에서, 늙은 석공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 "지킨다는 것은 잠들지 않는 것." 그 문장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의미가 달랐다.
1986년 겨울, 미모는 죽었다. 지금은 2025년 겨울. 나는 살아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킨다는 것은 울타리를 치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비바람 속으로 기꺼이 나갈 때, 돌아올 문을 닦아두는 것. 내 불안을 소진함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갱신해 주는 것. 나는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며칠을 곱씹었다. 어느 오후, 창밖으로 겨울나무들이 보였다. 앙상한 가지들이 서로를 향해 뻗어 있지만, 결코 얽히지 않았다. 각자의 방향으로 자라되,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50년 우정은 서로를 붙잡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가지를 존중하는 거리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며칠 뒤,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 진짜 산행 간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멋지다. 조심히 잘 다녀와. 갔다 와서 또 국밥이나 한 그릇 하자."
퉁명스럽던 국밥집의 내가 사라지고, 처음으로 그의 뒷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다. 문턱에 바람이 스며든다. 닫혔던 문이 열릴 때 비로소 공기는 순환하고 관계는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