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겨울은 따뜻했고, 내 피는 걸쭉해졌다. 은퇴 후 맞이한 거실의 소파는 늪과 같았다. 리모컨과 스마트폰, 그리고 적당한 온도의 보일러가 제공하는 안온함은 나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나는 휴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주 느리게 침식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먹는 것은 넘쳤고 움직임은 단절되었다. 이른 아침, 거실 한구석에서 떨리는 손으로 직접 측정한 공복 혈당 수치 146mg/dL은 내 몸이 보내는 비명이자, 내가 보낸 나태한 시간에 대한 물리적 고발장이었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을 읽는 순간, 나는 거실 소파에 누운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경고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는 편안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편안함에게 잡아먹히고 있다"고 썼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알았다. 내가 보일러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일러가 나를 조절하고 있었다는 것을. 과잉된 안락이 생존 본능을 거세한다는 말. 내 피가 걸쭉해진 것도, 혈당 수치가 오른 것도 그 증거였다. 이스터는 알래스카로 몸을 던졌다. 33일간 추위와 굶주림만 있는 곳. 그리고 나는, 책을 덮자마자 자전거를 꺼냈다.
저자의 알래스카가 있다면, 나에게는 월아산이 있다. 거실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목적지는 월아산이다. 그곳에는 기어비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허락하지 않는 수직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터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러킹'을 제안한다. 그러나 50대 후반의 무릎 관절은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대신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8.5킬로그램의 카본 프레임과 25%의 경사가 제공하는 저항은, 러킹과 본질적으로 같은 '짐'이었다. 안온한 몰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다시 불편함의 바다로 몰아넣는 것뿐이었다.
월아산 입구에서 자전거에 오르는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여가가 아니라 투쟁이 될 것임을. 초입의 완만한 경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업힐 구간이 시작되었다. 핸들에 장착된 속도계의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더니 이내 '25%'라는 숫자를 띄웠다. 눈앞에는 표지판 하나 없었지만, 내 손목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과 속도계의 숫자가 지면의 경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100미터를 전진하면 25미터를 수직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포장된 아스팔트는 이미 끝났다. 앞에 펼쳐진 것은 자갈과 흙이 뒤섞인 비포장 임도였다. 기어를 최저단으로 낮췄다. 상체를 핸들에 바짝 숙이고 안장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체중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지 않으면 25%의 경사각을 이기지 못하고 앞바퀴가 허공으로 들려버린다. 페달은 땅에 박힌 것처럼 무거웠다. 오른발로 힘을 주어 밀어 내리자 왼발이 따라 올라온다. 그 순간 허벅지 근육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저항이 솟아오른다.
한 바퀴. 그리고 두 바퀴. 바퀴가 자갈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핸들이 미세하게 떨린다. 앞바퀴는 돌부리를 피하려 좌우로 흔들리고,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며 기관지를 긁어댄다. 시야는 좁아지고 오직 2미터 앞 흙먼지와 자갈의 배치만이 선명하다. 뇌는 이미 포기를 권하고 있다. '내려라, 걸어 올라가라, 이건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세 바퀴째, 다시 네 바퀴째. 페달을 밀어 올릴 때마다 이상한 확신이 밀려왔다. 이것은 이동이 아니다. 바퀴 한 바퀴를 전진시킬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있다. '나는 살아내고 있다'고. 거실 소파에 누워 흘려보낸 시간들, 혈당 수치로 고발당한 안온한 나태, 그 모든 것이 비포장 도로 위 이 한 바퀴의 회전 앞에서 무화된다.
마이클 이스터가 말한 '자발적 고난'. 나는 월아산 자갈길에서 그것을 알았다. 은퇴한 남자들은 고통을 피하다가 서서히 죽는다. 안온함이 주는 죽음. 거실 소파에 누워있을 때, 나는 존재했지만 살아있지 않았다. 심장은 뛰었다. 그러나 의지는 죽어 있었다. 고통은 의지의 증거다. 고통은 독이 아니다. 고통은 증거다. 내가 살아있다는.
경사도 25%의 수직 벽이 끝나고 능선에 올라서면 지면은 10%의 완만함으로 순해진다. 고통이 물러간 자리에는 리듬이 찾아온다. 이제 페달을 밟는 행위는 의식의 영역을 벗어난다. 오른발과 왼발의 교차는 내 심장의 박동과 호흡의 간격에 스스로를 맞춘다. 마침내 '나'라는 의식은 희미해지고, 오직 순수한 물리적 감각들만이 산속의 정적을 채운다. 들리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타이어가 자갈을 으깨는 드르륵 소리, 헬멧 스티로폼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가슴뼈를 울리는 둔탁한 심박음.
이 순간, 나는 이스터가 말한 '따분함'을 이해했다. 스마트폰 없는 2시간. 온몸이 무언가를 갈구했다. 소리를. 빛을. 자극을. 그 권태를 견뎠다. 그러자 생각이 움직였다. 월아산 능선에서 나는 처음으로 디지털을 완전히 차단한 시간을 경험했다. 스마트폰은 배낭 깊숙이 묻혀 있었고, 25% 경사 앞에서는 그것을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생각이 사라진 자리. 고요만 남는다. 비어있지 않다. 깎여 나간 것뿐이다. 페달링은 기도가 된다.
올라온 길은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내리막은 올라갈 때보다 더 지독한 긴장을 요구한다. 초행길의 내리막은 속도의 쾌감이 아니라 제어의 시험장이다. 비포장 임도의 자갈은 교활하다. 앞바퀴가 돌부리를 밟는 찰나, 핸들은 요동치고 지면은 나를 팽개치려 든다. 나는 브레이크 레버를 쥔 검지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레버의 팽팽한 장력은 내가 쥐고 있는 생(生)의 끈과 같다. 내리막에서 내가 응시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돌아가야 할 집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내일 또 이곳에 오기 위해서라도 나는 안전하게 내려가야 한다. 무모한 질주는 용기가 아니라 오만일 뿐이다. 브레이크를 잡는 그 신중함 속에서 나는 확인한다. 내가 아직 이 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내일 다시 이 산에 오르기 위해 오늘의 나를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을.
산에서 내려와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프레임에는 흙먼지가 낀 채 굳어있고, 체인에는 자갈 사이를 지나며 묻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나는 호스로 물을 뿌리고 솔을 든다. 유지보수가 아니다. 동료를 씻겨주는 일이다. 오늘 나와 함께 25%를 올라온. 타이어 홈에 박힌 작은 돌멩이를 드라이버 끝으로 파낼 때, 나는 생각한다. 이 바퀴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8.5킬로그램의 카본 프레임과 고무 타이어는 나를 안락함의 늪에서 끌어올린 저항의 도구이자 동반자다. 체인에 윤활유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나는 깨닫는다. 이 쇳덩어리는 나의 야성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짐이자, 내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무게라는 것을.
저녁 식탁 앞에 앉는다. 밥과 된장찌개, 김치 몇 점. 소박하다. 그러나 젓가락을 드는 손은 떨린다. 허기는 정직하다. 거실 소파에 누워 느꼈던 가짜 식욕과는 다르다. 25%의 경사를 올라온 육신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이스터가 맞았다. 풍요는 감각을 무디게 하고, 허기는 감각을 벼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진짜 배고픔을 느낀다. 지금 이 밥 한 술은 생존의 응답이다
은퇴한 50대 후반 남성. 1인 가구. 평생 일해온 직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거실 소파와 스마트폰, 그리고 상승하는 혈당 수치뿐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은퇴는 '역할의 소멸'을 의미한다. 마이클 이스터가 알래스카에서 마주한 것은 자연의 황무지였지만, 내가 거실 소파에서 마주한 것은 역할의 황무지였다
이스터의 알래스카는 선택이었다. 33일 후 그는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의 은퇴는 선택이 아니었다. 돌아갈 직장이 없다. 이것이 이스터와 나의 결정적 차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할 수 있는 고통'을 붙잡았다. 월아산 25% 경사.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자, 역할의 황무지에서 나를 구출한 수직의 밧줄이다.
책을 읽은 11월 초, 내 손으로 측정한 공복 혈당은 146mg/dL이었다. 그 수치를 적은 메모지는 여전히 서랍 속에 있다. 그 숫자가 당장 사라진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은 11월 초 이후, 나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월아산에 올랐다. 바람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공복 혈당은 조금 내려갔고, 허벅지 근육은 단단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하는 의지가 살아있느냐는 것이다. 은퇴 후 남자는 과거의 명함으로만 정의되기 쉽다. '전 ○○회사 상무'였던 사람. 과거형. 그러나 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나를 정의하고 싶다. '매일 월아산에 오르는 사람'. 현재형. 내일도 모레도 나는 이 산에 오를 것이다. 그 선택의 반복이 결국 나를 만든다.
안락함은 거실의 따뜻한 보일러가 아니라, 고통을 견뎌낸 근육 속에 머문다. 편안함의 습격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나는 내일도 자전거를 탈 것이다. 월아산의 비포장 임도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다림 속에서,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혈당을 측정했다. 공복 혈당 132mg/dL. 14mg이 내려갔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 아침에도 나는 이 측정기를 들 것이고, 그 후 자전거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겨울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러나 내 피는 더 이상 걸쭉하지 않다.
숟가락을 든다. 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는다. 씹는다. 삼킨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