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늘에 새긴 부채, 오역된 안부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남강의 겨울은 강물보다 바람이 먼저 흐른다. 은퇴 후 나의 일과는 자전거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는 마찰음과 함께 시작된다. 진주교 아래를 지나 천수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강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마치 누군가 뿌려놓은 은빛 부스러기처럼 시리다. 그날도 평소처럼 페달을 밟고 있었다. 어젯밤 내린 진눈깨비로 노면이 젖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속도를 높였을 때, 뒷바퀴가 헛돌며 비틀거렸다. 고꾸라진 자전거 체인이 흙바닥을 긁으며 빠져나왔다.


체인을 다시 걸기 위해 차가운 프레임 사이에 손을 집어넣자, 마디마디에 검고 비릿한 기름때가 순식간에 묻어났다. 닦아낼수록 번지기만 하는 그 끈적한 얼룩을 보며, 나는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떠올렸다. 과장에서 팀장으로, 팀장에서 상무로 올라가며 25년을 달려온 내 이름 뒤에 붙어있던 견고한 수식어들이 사라진 자리, 그 텅 빈 여백을 채우려 집어 든 책이었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 팝송 가사 "I'm young"을 "안녕"으로 오해한 여자. 이별 후에야 깨닫는다. 사랑의 인사로 믿었던 말이 사실은 "나는 젊다, 안다"는 상처의 예고였다. 손에 묻은 기름때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 역시 평생 하나의 거대한 오역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내가 타인에게 건네온 수많은 '안녕'은 실은 얼마나 무책임한 절차적 안부였을까.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회의실에서 나는 그 말을 수없이 건넸다. 그러나 그 물음표 뒤에는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진심이 아니라, 빨리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고 싶은 조급함만 있었다.


25년간 나는 세 개의 가면을 썼다. 첫 번째 가면은 「홈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김애란의 소설 속 연극배우가 화려한 파티의 중심에 서 있지만 묘한 이질감을 느끼듯, 나 역시 회사라는 무대에서 상무라는 배역을 연기했다. 회의실 테이블 끝자리. 나는 그 테이블의 모서리였다. 날카롭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는. 25년 동안 나는 '성과'라는 이름으로 숫자를 관리했다. 분기별 실적, 팀원 평가, 예산 조정. 상무 명함 뒤에서 나는 동료들의 삶을 엑셀 시트의 셀로만 읽어냈다.


두 번째 가면은 「좋은 이웃」이었다. 소설 속 이웃 관계의 계층 갈등과 비애. 나는 한 번도 진짜 '좋은 이웃'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옆 팀, 아래 부서, 협력사 직원들. 그들은 내게 '이웃'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었다. 팀장 시절, 육아로 힘들어하던 직원이 조퇴를 요청했을 때 나는 "팀 분위기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그 직원의 얼굴이 굳어지던 순간, 회의실 에어컨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러나 나는 곧 다음 회의로 향했다.


세 번째 가면은 「레몬케이크」였다. 이 소설은 녹아내림의 기록이다. 모녀가 부고를 전하러 가는 동안 케이크가 녹듯, 하고 싶었던 말들도 녹아 사라진다. 암 투병 중이던 동료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유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정해진 위로의 문장들을 읊조린 후, 나는 전화를 끊었다. 레몬케이크조차 건네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10분 만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저녁 나는 다른 팀과의 회식 자리에 있었다. 가면 뒤에서 나는 내 얼굴을 잊었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 두 가지가 남았다. 하나는 「이물감」이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목에 걸린다. 뱉어내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이물. 은퇴 후 과거 동료들의 소식을 몰래 찾아봤다. 평생 나를 지탱해주던 명함 케이스가 책상 서랍 깊숙이 들어간 뒤, 내 몸 구석구석에는 소화되지 않는 찌꺼기들이 고여 있었다. "나중에 얘기하자"며 미뤘던 대화들. 팀원들의 개인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날들. 그 모든 침묵이 밤마다 나를 찾아왔다.


다른 하나는 「숲속 작은 집」의 질서 붕괴였다. 소설 속 부부는 해외 생활 중 메이드와의 만남으로 일상의 질서가 흔들린다. 상무실의 시계가 멈춘 날, 나는 시간을 읽을 줄 몰랐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관리'했다고 믿었던 세계. 그 아래 누군가의 침묵이 깔려 있었다. 얇은 얼음판처럼. 내 성과는 팀원들의 야근 위에, 내 승진은 누군가의 퇴사 위에 있었다.


그날 아침, 남강변에서 체인을 다시 걸려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검은 기름이 파고들었다. 닦아도 번졌다. 한참을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때였다. "괜찮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자전거를 세우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저었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쪼그리고 앉아 체인을 살피고 있었다.


"기름 묻어요. 손 더러워져요."


"괜찮아요. 저도 자전거 타는데, 이런 거 자주 해요."


손가락이 움직였다. 또각또각. 체인이 기어에 걸리는 소리가 났다. 내 손에 묻은 것과 똑같은 검은 기름이 청년의 손에도 묻어갔다. "다 됐어요. 이제 탈 수 있어요." 청년이 일어서며 손바닥을 바지에 쓱 닦았다. 검은 얼룩이 남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처럼」은 상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낯선 이의 작은 우산 하나가 무너진 세계를 다시 세우는, 회복의 기록이다. 청년의 더러워진 손을 보며 내 손에 묻은 기름때가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25년 동안 깨끗한 상무실에서 건넨 수많은 '안녕하세요'보다, 이 청년의 기름 묻은 손이 더 진짜 안녕에 가까웠다.


페달을 밟는다. 손마디에 묻은 검은 기름때는 여전하다. 나는 닦지 않는다. 기름때가 손등에서 천천히 마르고 있었다. 닦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이. 노년의 평화는 과거를 씻어내는 깨끗한 세탁이 아니라, 이제 이것도 나라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세상과 올바른 기어로 맞물리는 소리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현대인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돈, 이웃, 이별, 그리고 하지 못한 말들. 이 평범한 단어들 뒤에 숨겨진 서글픔과 불편함을.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용기를. 나는 원고지 위에 '안녕'이라는 글자를 천천히 적었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으려고.


예순을 앞둔 산책자에게 '안녕'은 더 이상 가벼운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외면했던 삶들에 대한 부채감이며, 이제 매일 아침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가는 언어다. 외면했던 이름 하나, 삼켰던 말 하나. 남강의 찬 바람 속에서 나는 다짐한다. 다시는 나의 평안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오역하지 않겠노라고.


강물은 흐른다. 나는 그 흐름에 몸을 실은 채 내가 외면했던 이름들을 하나씩 마음의 수첩에 적어 넣는다. 「빗방울처럼」의 주인공이 잃어버린 존재감을 되찾듯, 나 역시 기름때 묻은 손으로 문장을 적으며 비로소 나 자신에게 정직한 안부를 묻는다.


그것만이 내가 남강에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인사다. 혼자 사는 집. 저녁마다 책상 앞에 앉는다. 노트북 키보드 소리만 작은 방을 채운다. 이것이 나의 증언이다.


글을 쓰고 나서

「레몬케이크」 "모녀가 부고를 전하러 가는 동안 케이크가 녹듯" 등은 원작의 설정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