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이시봉은 바보처럼 꼬리를 흔든다. 상품이 되어가는 순간에도, 주인이 우울할 때도. 그저 꼬리를 흔든다. 매일 오전, 나는 산책로에서 꼬리 흔드는 개들을 만난다. 겨울이다. 입김이 하얗다. 나는 키우지 않는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혼자 사는 집. 냉장고 소리만 들린다. 그래도 나는 이시봉 같은 존재를 들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묻는다. "외롭지 않아요? 강아지라도 키우지 그래요?" 나는 얼버무린다. "귀찮아서요." 거짓말이다. 진짜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다시 누군가를 돌보고 싶지 않다. 몇십 년 누군가를 돌보며 살았다. 이제 그만이다. 이기호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읽으며, 나는 그 이유를 마주했다.
소설 속 이시봉은 꼬질하다. 비숑 프리제, 유럽 왕실 출신의 고귀한 혈통이지만 개 농장을 거쳐 한 가정의 반려견이 되었다. 주인 이시습이 방황할 때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고 집안이 위태로울 때도 이시봉은 그저 꼬리를 흔든다. 작가는 이것을 "어둠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라고 쓴다. 처음엔 아름다워 보였다. 읽다 보니 목이 막혔다.
브리딩 업체 '앙시앙 하우스'가 찾아온 장면이 있다. 이시봉에게 수천만 원 가격표를 붙인다. 그 순간에도 이시봉은 꼬리를 흔든다. 자신이 상품이 되어간다는 것을 모른다. 인간의 탐욕도 모른다. 그저 명랑하다. 이 장면에서 숨이 멎었다. 이시봉은 자신이 팔리는 순간에도 꼬리를 흔든다. 바보 같다. 아니, 나는 이 명랑함이 견딜 수 없다. 명랑함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시봉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시봉은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소설 속 아버지는 말한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하다고. 특히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더 그렇다고. 아버지는 안다. 사랑의 본질을. 하지만 아버지도 예측할 수 없이 죽는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직 젊었다.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문장이 가슴에 걸렸다. 예측 불가능. 나는 그것을 피해왔다. 은퇴 후 나는 예측 가능한 것들만 선택해왔다. 매일 같은 시간 산책, 정해진 루틴, 통제 가능한 일상. 글을 쓰는 것도 그랬다. 쓰고 싶을 때 쓰고, 쉬고 싶을 때 쉰다.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시봉은 다르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먼저 떠난다. 소설을 읽으며 알았다. 나는 에너지가 없는 게 아니다.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키우지 않는 것도 책임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거짓말이다. 그것은 책임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소설 속 이시습이 어둠 속을 헤맬 때, 이시봉은 꼬리를 흔든다. 이시습은 이시봉에게 기댄다. 나에게는 이시봉이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이것이 자립인가, 고립인가. 그때 보았다.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이시봉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삶도 그렇다. 현역 시절의 치열함은 끝났다. 명함을 버렸다. 남은 건 조용한 일상이다. 평화로운가. 아니, 무기력하다.
소설 속 이시봉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이시봉의 삶은 인간이 결정한다. 생각했다. 나도 보이지 않는 목줄에 달려 있다. 통장 잔고, 건강검진 결과, 아무도 찾지 않는 전화기. 이것들이 나의 삶을 규정한다. 이시봉처럼 "짧고 투쟁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소설 제목은 "명랑한" 이시봉이다. 하지만 나는 명랑하지 않다. 이시봉은 어둠 속에서도 꼬리를 흔들지만, 나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불안하다. 60대가 된 지금, 불안하고 외롭다. 사회는 은퇴자가 여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명랑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모르는 것이 때론 행복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목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예측 불가능이 두렵다는 것을, 명랑할 수 없다는 것을. 구경꾼은 너무 많이 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책임을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나는 구경꾼이기 때문이다. 구경꾼은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비겁한가.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이시봉을 키우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키우지 않는다.
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났다. 다시 산책로다. 겨울 아침이다. 비숑 프리제가 다가온다. 하얀 털에 서리가 맺혔다. 꼬리를 흔든다. 나도 손을 든다.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 않는다. 나는 구경꾼이다. 작가가 던진 질문 앞에서 나는 침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