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아 대신 된장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어머니의 냉장고 문을 연다. 유통기한 지난 된장, 곰팡이 핀 김치, 비닐봉지에 싸인 반찬들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데 손이 멈췄다. 버려야 한다. 그런데 버릴 수가 없다. 이것들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공포였다.


어머니는 밥그릇을 비우셨다. 쌀알 하나도 남기지 않으셨다. 앙상한 손가락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긁어서. 내가 묻는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신다. 대답 대신 그릇을 물에 헹구신다. 그때가 언제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열다섯 살 소녀였던 1950년 그해. 휴전 후 70년이 넘게 흘렀어도, 어머니는 밥그릇을 긁으셨다.


어머니의 밥그릇은 늘 작았다. 우리가 먹고 남은 것을 드셨다. "나는 입맛이 없다." "나는 이거면 돼." 평생 가족을 위해 밥을 지으셨지만, 정작 어머니 자신을 위한 밥은 없었다. 그 작은 사기그릇. 어머니의 전쟁.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여는 습관이 있으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외출 전에, 잠들기 전에. 특별히 꺼낼 것도 없이 그냥 문을 여시곤 했다. "뭐 찾으세요?" 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어머니는 안을 오래 들여다보시다 문을 닫으셨다.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안에 무언가 있는지. 비어 있지 않은지. 그 습관을 나는 물려받았다. 은퇴 후 혼자 사는 지금도, 나는 하루에 몇 번씩 문을 연다.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나도 음식을 남기지 못한다.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회사에서 25년을 일하며 임원 자리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첫 회식 자리, 후배들이 남긴 밥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쌀알이 그릇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신경 쓰였다. "뭐 안 드시는 거 있으세요?" 후배가 물었다. "아니, 다 잘 먹어." 나는 내 밥그릇을 끝까지 긁어 먹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받은 명절 선물 세트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고급 한우, 참치 세트, 과일 바구니. 유통기한이 지나가고 있었다. 혼자 사는 집에서 이것들을 다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버리지 못했다. 통장엔 7자리 숫자가 찍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다.


통장은 채워졌으나 마음은 늘 흉년이었다.


명함을 버린 날, 나는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혼자 보는 냉장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빈 공간이 나를 삼킬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편의점에 갔다. 반값 도시락 다섯 개를 샀다. 채워야 했다. 무엇이든 채워야 했다. 비어 있으면 안 됐다.


은퇴 후 혼자 사는 집을 둘러본다. 서랍 속 비닐봉지, 고무줄, 빈 병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요새처럼 쌓여 있다. "언젠가 쓸 수 있어." 나는 혼잣말을 한다. 어머니가 하시던 말이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다. 한 구절에서 손이 멈췄다. "싱아가 지천으로 지천으로 지천으로 널렸다." 시큼한 맛이 나는 산나물 싱아. 나는 싱아가 무엇인지 모른다. 어머니도 내게 싱아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다.


어머니가 기억한 것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이었다. 들판의 싱아가 아니라, 냉장고의 된장이었다. 박완서는 유년의 개성을 회상하며 그 풍요로운 시절을 글로 남겼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회상할 풍요가 없었다. 있었던 것은 배고픔뿐이었다.


창밖을 내다본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가로등이 켜져 있다. 저 불빛 아래 싱아가 자랄 들판은 없다. 책을 덮는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박완서는 전쟁 중에도 인간은 배고픔을 느낀다고 썼다. 가장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식구들은 밥을 먹는다. 슬픔보다 배고픔이 먼저였다.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폭격 속에서도, 피난길에서도 배가 고팠을 것이다.


박완서는 상실을 글로 남겼다. 어머니는 상실을 냉장고에 채워 넣으셨다. 어느 것이 더 나은 방법일까. 6.25가 들판의 싱아를 앗아간 자리에, 어머니는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쌓으셨다. 사라진 것은 자연이었고, 채워진 것은 공포였다.


은퇴 후 나는 혼자 밥을 짓는다. 쌀을 씻는다. 물을 붓는다. 밥솥 버튼을 누른다. 칙, 하고 증기가 빠지는 소리. 밥 짓는 냄새가 집 안에 퍼진다. 손은 쌀을 씻고 있지만, 머릿속엔 어머니가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의 냉장고를 비우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유통기한은 계속 지나갔지만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유통기한 지난 된장을 꺼낸다. 2007년 3월 15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이었다. 2년 동안 어머니는 이 된장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버리지도, 먹지도 않고. 나는 쓰레기봉투를 편다. 그 안에 된장을 넣는다. 손이 떨린다.


다음은 김치다.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있다. 비닐봉지에 싸인 반찬도 꺼낸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하나씩. 쓰레기봉투가 무거워진다.


냉장고가 조금씩 비워진다. 어머니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옳은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어머니가 평생 지킨 것을 버리는 이 행위가, 극복인지 배신인지. 어머니라면 뭐라고 하실까.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밥솥에서 김이 오른다. 나는 어머니의 작은 사기그릇을 꺼낸다. 오늘은 가득 담는다. 그런데 문득, 이것도 또 하나의 강박은 아닐까. "가득 담아야 한다"는. 빈 냉장고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빈 그릇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일 아침, 나는 이 밥을 남기지 않고 먹을 것이다. 쌀알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울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쌀을 씻는 내 손이 어머니의 손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