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폭력의 역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by 건강한 오후

보고서가 쓰레기통 바닥을 때렸다. 둔탁했다. 25년의 무게가 그렇게 끝났다. 종이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손바닥에 묻은 잉크 자국—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서류의 흔적들이 아직 내 손끝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지막 보고서는 '우리 팀의 성과'라는 제목이었다. 2년간의 야근과 주말 출근이 '헌신'이라는 단 두 글자로 요약되어 있었다. 그 시간 속 나의 불안은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고독도, 번민도. 오직 '팀의 승리'만 남아 있었다. 종이를 구기는 순간, 여름이 떠올랐다. 어느 토요일 아침.


그날 친구가 보낸 문자. "이번 주말 지리산 간다. 오랜만에 얼굴 보자."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금요일 오후 5시 30분, 팀장이 회의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 기획안 마무리해야 해. 다들 한 번씩만 나와주자."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실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에서 '거절'이라는 단어는 이미 삭제되어 있었다.


토요일 아침 9시. 텅 빈 공장 사무동. 형광등 소리만 윙윙거렸다. 나는 엑셀 시트를 열었다. 셀 안에 숫자를 입력했다. A3, B7, C12. 숫자들이 나를 구원해줄 것 같았다. 아니, 잊게 해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창밖으로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공장 건물 옥상의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주말인데도 생산라인은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은 지금쯤 지리산 능선을 오르고 있을 터였다. 땀에 젖은 등산복. 능선 위 바람. 정상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 나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클릭, 드래그, 복사, 붙여넣기. 단순한 반복이 나를 마비시켰다. 좋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일요일 저녁. 단체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정상 표지판 앞에서 찍은 사진. 친구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좋아요'를 눌렀다. 습관처럼. 그리고 방을 나왔다. 월요일 아침, 팀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 덕분에 보고서 잘 올라갔어."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우리 팀은 포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승리 어디에도, 내가 놓친 여름 주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매년 여름 산에 오른다. 나는 한 번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믿으며 25년을 버텼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펼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였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폐쇄된 섬.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은 환자들에게 '낙원'을 약속했다. 간척지를 만들고, 농장을 일구고, 자립 공동체를 건설하겠다고. 그의 의도는 선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책장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한 문장이 눈에 박혔다. "당신들의 천국."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어딘가에서 미세한 통증이 일었다. 왜 '우리들'이 아니라 '당신들'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사이의 틈에 서 있었다.


조백헌이 꿈꾼 천국은 타인의 시선으로 설계된 낙원이었다.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야 할 과거였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농장이 조성되는 동안, 환자들 자신의 역사는 사라졌다. 빈 사무동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도 '발전'이었다. 분기 실적. 성과 지표. '우리 팀'의 승리. 그러나 그 승리의 집단 속에서, 내가 놓친 여름은, 내가 거절하지 못한 주말들은, 이미 삭제되어 있었다.


환자들은 조백헌의 낙원을 거부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주정수 원장은 소록도를 '모범 요양소'로 만들겠다며 환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아름다운 섬을 만드는 대가로 환자들은 단종 수술을 강요받았다. 미래를 빼앗긴 자들이 낙원을 지었다. 그 낙원의 주인 주정수는 마침내 자신의 동상 앞에서 환자의 손에 살해당했다. 환자들은 알고 있었다. 타인이 설계한 천국은 결국 감옥이라는 것을.


나에게도 기억이 있었다. 입사 10년 만에 과장으로 진급하고 난 직후였다. 나는 팀원들과 밤을 새워 기획안을 만들었다. 우리는 흥분했고,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 보고 자리에서 임원은 우리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우리 부서가 해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복도를 나서며 팀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한 건데."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나는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편의점에서 산 소주를 혼자 마셨다. 반찬도 없이,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취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셔도 또렷했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나는 일어나 양복을 입었다. 거울 속 내가 기계적으로 웃고 있었다. 출근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개인의 이름은 '우리'라는 단어 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를 삭제하기 위해 고안된 가장 효율적인 지우개였다.


그리고 나는, 과장이 되고 나서 그 '우리'라는 말을 가장 자주 입에 담는 사람이 되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주말을 부드러운 미소로 지워버리는 선한 폭력의 공범이었다.


소설 속에서 이상욱 보건과장은 조백헌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환자들에게 비판할 자유를 주십시오." 천국의 거주민들이 거부할 자유를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짜 천국일 뿐이다. 진정한 구원은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인정하며 살아갈 권리, 즉 기억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비판하지 않았다. 아니, 비판할 언어를 잃어버렸다. 회식 자리에서 팀장이 "요즘 일이 너무 과하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것이 자발적 동의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집단적 침묵이었다. 나는 '좋아요'를 누르는 데 익숙해졌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동의를 표시하는 동안, 내 안의 다른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천국에도 거부할 자유가 있어야 했다. 아니, 그 자유가 없다면 천국이 아니었다.


조백헌은 간척사업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섬을 떠났다. 그러나 5년 후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군복을 벗고, 동행자로서 환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고통스러운 기억조차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투쟁의 시작이었다.


나도 떠났다. 25년간 사용했던 명함을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보고서를 폐기했다. 이제 나는 쓴다. 조직이 지운 실패들을, 고독했던 밤들을,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 뒤에 숨겨야 했던 '나'의 기록을.


새 공책을 펼쳤다. 흰 종이가 눈부셨다. 펜을 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첫 문장을 썼다.


"그날 지리산에는 바람이 불었다. 나는 바람을 외면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침묵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의 형광등 소리를, '좋아요'를 누르던 손가락의 떨림을, 친구에게 보내지 못한 답장을, 거울 속에서 비겁하게 웃던 내 얼굴을 한 문장 한 문장 기록했다. 쓰면 쓸수록 손이 떨렸다. 기록된 '나'는 생각보다 초라했고, 복구된 기억은 상처보다 쓰라렸다.


과거는 '기억하라' 명령했다. 나는 이제 자발적으로 기억하고, 말할 권리를 되찾으려 한다. 타인이 설계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이 초라함과 실패까지 온전히 껴안아야 할 나의 삶을 향해.


휴대폰을 들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음 여름, 함께 갈 수 있을까. 지리산에."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직은.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공책을 다시 펼쳤다. 다음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