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의 노래』를 읽고
이제는 기록만 남는다. 나는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 예순을 앞둔 지금,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는 25년 동안 써온 낡은 일기장들이 쌓여 있다. 오늘 아침, 그중 2010년 겨울의 페이지를 펼쳤다. "면담 완료. 저녁 회식. 내일 본부장 보고."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쓸 수 없었다.
2010년 겨울, 팀장이었던 나는 구조조정 예비 명단을 작성해야 했다. 본부에서 내려온 지침은 명확했다. "객관적 평가 기준에 따라 하위 30% 선정." 나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엑셀 파일을 열었다. 이름, 나이, 근속연수, 평가 점수. 1995년 입사 후 15년을 함께 일한 후배들이 숫자로 환원되었다.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기준에 따라 정렬했다. 점수 낮은 순으로. 명단을 본부에 올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최종 통보가 내려오는 동안, 후배들은 내게 물었다. "팀장님, 저 괜찮은 거죠?" 나는 "아직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팀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명단을 작성했지만, 결정권은 없었다.
통보 다음 날, 후배 한 명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더니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물었다. "팀장님, 제 아이가 내년에 대학 가는데요. 등록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사치였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가고, 나는 일기를 썼다. "면담 완료." 그것뿐이었다.
그 무력함 속에서, 나는 서점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집어 들었다. 책장을 넘기다 멈췄다. "나의 낡은 갑옷은 녹이 슬었다." 그 한 문장이 가슴을 찔렀다. 김훈은 이순신을 국가적 영웅이 아니라 "몸이 썩어가는 사내"로 그리고 있었다. 전쟁은 웅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루한 생존의 연속이었다. 병사들은 굶주리고, 전염병에 쓰러지고, 추위에 떨었다. 조정은 의심하고, 동료는 질투하고, 백성은 도망쳤다. 이순신은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다.
며칠 뒤, 나는 민음사의 『난중일기』 교감 완역본을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고, 나는 밤새 그 일기를 읽었다. 날씨와 장소는 상세했지만,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항상 아팠다. 학질, 위장병, 오한. 매일매일 육체적 고통이 반복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참수했다"는 짧은 기록이 끼어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순신의 "참수했다"와 나의 "통보했다"는 같은 무게를 지닌 문장이라는 것을. 감정을 기록하는 것은 사치였다. 나약함이었다. 그 건조함 자체가 우리가 택할 수 있었던 가장 처절한 표현이었다.
올해 5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1주일 입원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 첫날 밤, 간호사가 "일어나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침대 끝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고, 허리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왔고, 식은땀이 났고, 그러나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퇴원 후 병원을 오갈 때마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퇴행성이에요. 나이 드니까 다들 그래요." 퇴행성.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앞으로도 아플 것이고,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떠올랐다. 『난중일기』의 한 문장. "오늘도 학질이 심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겠으나, 군중을 순시하다." 15년 전 그 책을 읽을 때, "학질"이라는 단어는 멀었다. 역사책 속 질병이었다. 그러나 지금,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찾아오는 이 통증은, 이순신이 겪었던 그 고통과 다르지 않았다. 그도 매일 아팠을 것이다. 퇴행성. 그에게도 되돌릴 수 없는 병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야 했다. 병사들이 그를 기다렸으니까.
역사는 영웅 서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조작한다. 이순신의 23전 23승은 기록되었지만, 그의 학질은 기록되지 않았다. 나의 팀장 승진과 프로젝트 성공은 기록되었지만, 2010년 겨울 후배의 등록금 걱정은 기록되지 않았다.
김훈은 『칼의 노래』를 통해 이 영웅 서사의 폭력성을 절제된 문장으로 고발한다. 우리는 그의 문장을 통해, 승리의 기록 뒤에 숨겨진 고독한 인간의 진실을 비로소 기억하게 된다.
오늘 아침, 나는 새 일기장을 펼쳤다. 오른쪽 허리가 쑤셨다. 날씨는 흐렸다. 나는 펜을 들고 날짜를 적었다. "2025년 12월 1일. 흐림. 허리 아픔.“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미안하다“
15년이 걸렸다.
이제는 감정을 기록한다. 퇴행성 질환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기록만은 되돌릴 수 있다. 2010년 겨울, 내가 쓰지 못했던 그 한 문장을.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쓰지 못했던 그 고통을. 김훈이 『칼의 노래』로 복원해낸 것처럼, 나도 이제 나의 일기를 다시 쓴다.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기록은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