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세, 혹은 한 줌의 가루

신경숙『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빛바랜 사진 속 스무 살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아래 적힌 '김순세'라는 낯선 이름 세 글자가 생경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늘 '엄마'였을 뿐, 김순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낯선 이름과 마주하는 순간, 2009년 어머니를 화장하던 날의 기억이 섬광처럼 되살아났다. 화장장의 뜨거운 불이 꺼지고 직원이 어머니의 몸이 변한 하얀 뼛가루를 수습하여 작은 함에 담던 그 시간, 나는 그 가루를 1989년에 먼저 떠난 아버지 곁에 모셨다. 그때 나를 휘감았던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평생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역할로 사셨지만, 결국 그 누구의 역할도 아닌 한 줌의 가루, 생전의 꿈과 외로움과 고통이 모두 소멸해 버린 익명의 잔해로 돌아갔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전율했다. '김순세'라는 고유명사가 '가루'라는 잿빛 익명성으로 산화해 버린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녀가 품었던 간절한 소망과 불안했던 스무 살의 내면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궁금해한 적 없다는 뼈아픈 회한에 젖었다.


1989년, 아버지가 예순도 되기 전에 떠났다. 그때 나는 스물셋, 방위 복무 중이었다. 사복을 입고 부대로 출퇴근하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생의 궤도 밖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거친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굴건제복을 갖춰 상주 완장을 찼다. 상여를 뒤따라 산소로 향하며 나는 상주라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길 위에서도, 관 속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역할만 보았지, 한 인간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 쉰다섯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홀로 남은 세월을 견뎌냈다. 2009년 어머니마저 떠났을 때, 나는 두 번째 상주 완장을 찼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평생 '차남'이라는 역할 속에 갇혀, 부모님을 한 번도 '인간'으로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은퇴 후 어느 날, 동네 도서관의 서늘한 서가 사이를 걷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집어 들었다. 표지의 '엄마'라는 두 글자가 가슴을 찔렀다. 나는 15년 동안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부탁'받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마주한 소설 속 '엄마'의 부재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물리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녀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투명인간이었다.


신경숙은 사라진 엄마 대신, 엄마가 직접 말하게 했다. "나의 슬픔을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 비수 같은 고백을 읽으며 나는 떠올렸다. 소설 속 박소녀가 그림을 좋아했고 누룩 장사를 하며 굴욕을 견뎠듯, 나의 김순세는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견뎌냈던가.


어머니는 소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글을 알았고, 암산은 우리 삼남일녀보다 빨랐다. 장날이면 어머니는 농산물 값을 주판도 없이 척척 계산해냈다. 쌀 한 가마니 값, 감자 한 망 값, 거기서 빼야 할 종자 값과 비료 값까지. 나는 대학을 나와 회사에서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어머니의 손가락보다 빠르지 못했다. 그 손가락은 평생 흙을 만지고, 밥을 짓고, 자식 넷을 키워냈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셨어요?"


2009년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의 옷장 깊숙한 곳에서 낡은 공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일기가 아니었다.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쌀값, 농약값, 학비, 제삿날. 그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어머니의 글씨가 있었다.


"삼남일녀 다 키웠다."


단 여섯 글자.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어머니가 평생 숫자로 살아온 흔적이었다. 어머니에게 '김순세'라는 이름은 그 여섯 글자 속에 용해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공책을 펼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인생이 숫자로 정리되는 동안, '김순세'는 어디에 있었을까.


역할이란 어쩌면 집단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가장 세련된 형태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엄마'라는 역할 뒤에 숨어, 한 인간의 고독과 꿈을 외면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해 왔다. 나는 25년간 명함 속 '상무'라는 완장을 차고 살았지만, 정작 어머니가 평생 차고 있던 '엄마'라는 완장의 무게는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투명함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가족의 무심함이라는 일상의 폭력이 끝내 한 존재를 지워버린 필연적 결과였다.


우리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그녀의 이름인 '박소녀'를, 그리고 나의 어머니 '김순세'를 기억해야 한다. 엄마이기 이전의 한 인간이었던 그녀의 꿈과 고독, 젊은 날의 빛나던 순간을 기어이 복원해 내는 것만이 우리가 일상의 무심함이 낳은 폭력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 밤, 나는 걸 수 없는 전화를 머릿속으로 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이 다르다. "엄마, 학교에 가고 싶으셨어요? 주판을 배우고 싶으셨어요? 당신의 그 빠른 암산이 학교에서 칭찬받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으세요?"


수화기 너머로는 영원히 들리지 않을 침묵만이 흐른다. 어쩌면 사랑이란 눈앞에 실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흩어져 버려 닿을 수 없는 것, 결코 다시는 품을 수 없는 시간들을 향해 기어이 손을 뻗어보려는 안타까운 몸짓 그 자체일지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자 하는 것은 엄마라는 역할 뒤에 숨어 있던, 이제는 영원히 만져지지 않을 과거의 한 인간, 박소녀이자 김순세인 그녀의 잊힌 시간이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 곁을 지나가 버린 사람에게 바치는 가장 깊고도 절박한 사랑의 증거다. 오늘 밤, 나는 다시 그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본다. '김순세'라는 이름 석 자를, 그리고 그 공책의 여섯 글자를, 이제는 낯설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