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기억의 윤리, 문장의 온기

by 건강한 오후

아버지가 떠난 지 35년, 어머니가 곁을 비운 지 15년이 흘렀다. 숫자는 참으로 냉정하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직장에서 25년을 보냈고, 수많은 명함과 보고서 위에 이름을 찍어 올렸다. 명함이라는 '종이 완장'이 살갗에 들러붙어 나를 조종하는 동안,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은 속절없이 풍화되었다.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1989년의 정지된 화면 속에 멈춰 있고, 어머니는 2009년의 희미한 실루엣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그 사이, 나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왔을까.


은퇴 후 처음으로 마주한 텅 빈 여백 속에서 나는 책을 붙잡았다. 한 달에 열 권씩 읽는 것은, 잊힌 나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3년이면 360권. 그 숱한 문장 속에서, 내 기억의 결을 가장 깊이 건드린 17권만을 남겼다. 이 기록은 단순한 독서의 궤적이 아니다. 타인의 문장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쓰기 시작한 3년의 참회록이다.



문학은 사라지는 얼굴을 다시 불러내는 마지막 언어다. 나는 한강과 쿤데라, 프리모 레비와 귄터 그라스의 문장 속에서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지우려 했던 개인의 통증과 마주했고(분노와 직면), 모디아노와 제발트, 이청준과 박완서가 헤매던 폐허 속에서 전쟁의 상흔이 어떻게 대를 이어 흐르는지 목격했다(연민과 추적). 그리고 울프와 신경숙, 소세키와 토니 모리슨의 내밀한 고백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장대한 역사가 아니라, 뚝배기 속 국물의 온기나 누군가 건넨 "식기 전에 들어라" 같은 사소한 다정함, 그리고 어머니 공책 마지막 페이지에 쓰인 '삼남일녀 다 키웠다'는 여섯 글자였다는 것을(치유와 귀환).


3년의 여정 동안 나는 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동시에 나를 다시 써 내려갔다. 이 에세이들은 잊힌 얼굴들을 향한 조용한 소환장이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진짜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고 있는 얼굴은 누구인가. 당신이 쥔 '현재'의 명함이 너무 무거워, 정작 간직해야 할 과거의 온기를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책을 덮는 순간, 오래전 묻어두었던 누군가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게 된다면, 나의 3년은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다. 오래 잊고 있던 그 얼굴을 조금 더 따뜻하게 떠올리는 작은 변화. 그것이 내가 이 긴 소풍을 기록한 유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