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보:
- 제목: 절창
- 저자: 구병모
- 출판일: 2025년 9월 17일
- 장르: 소설
남강을 달린다.
겨울 강물은 안개 속에 숨고, 나는 페달을 밟으며 생각한다.
타인을 읽는다는 것. 그 불가능한 일에 대하여.
구병모의 『절창』을 읽었다. 타인의 상처를 손끝으로 만지면 그 사람의 기억이 보인다는 여자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가 읽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 또 다른 오독일 뿐이었다.
남강의 안개처럼, 우리는 서로를 희미하게만 본다.
타인의 상처를 만지다
『절창』의 주인공은 '아가씨'라 불린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를 접촉하는 순간,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읽는다.
흉터를 손끝으로 더듬으면 고통이 밀려든다. 슬픔이 전해진다.
이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왜냐하면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처를 보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읽는다. 같은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에 도달한다.
구병모가 묻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확한 독해일까, 아니면 기꺼이 길을 잃는 일일까?
상처조차 오독된다
『절창』에서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를 만지며 그 안에 담긴 기억을 읽는다.
하지만 상처를 통해 본 것조차 완벽한 진실은 아니다. 같은 상처를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같은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구병모는 이렇게 썼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멈췄다.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상처가 필연이라면, 그 속에서 발효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그 상처를 만지고 들여다봐도 우리는 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해석을 만날 뿐이다.
월아산에서 읽은 것
월아산 임도 3km 지점. 벤치에 앉아 이 대목을 읽었다.
바람이 불었다. 책장이 넘어갔다.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타인을 끊임없이 오독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의 표정을, 브런치 독자의 댓글을, 40년 함께한 사람의 침묵을.
산은 고요했고, 내 안의 오독들만 소란스러웠다.
40년 친구의 오해
어제 대학 동기를 만났다. 40년 우정이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가 말했다.
"너 요즘 좋아 보인다. 편해 보여."
나는 웃으며 "그래"라고 답했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여유와 외로움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는 일상이 편안함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만든 도피처라는 것을.
40년 친구도 내 외로움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도 그의 고독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오독하면서도 매주 만나 커피를 마신다.
이것이 바로 『절창』이 말하는 '비효율적 사랑'이 아닐까.
글쓰기, 그리고 전달되지 않는 것들
글을 쓸 때마다 생각한다.
전달하려던 외로움이 여유로 읽힐 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려던 고독이 부러움을 살 때가 있다는 것을.
글쓰기 자체가 오독의 과정이다.
나는 내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지만, 독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읽는다. 그 틈에서 우리는 어긋나면서도 연결된다.
구병모가 말한 것처럼,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닿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느슨한 발걸음
다시 남강을 달린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안개는 여전히 피어오른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안다. 오늘 쓴 글도 누군가에게 오독될 것을. 40년 친구도 내 외로움을 모를 것을.
하지만 괜찮다.
상처를 통해서라도 우리는 닿는다. 오독하면서도 사랑한다.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애쓴다.
구병모는 이것을 '기꺼이 길을 잃는 일'이라 불렀다.
나는 이것을 '느슨한 발걸음'이라 부르고 싶다.
60세의 일상이, 자전거와 책과 커피가, 그리고 브런치에 쓰는 이 글조차도 모두 느슨한 발걸음이다.
앞으로, 천천히, 오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