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세계와 '나'의 길
어릴 적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사람 일은 사람이 하고, 하늘 일은 하늘이 한다." 그 말은 오래도록 진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인간은 더 이상 하늘의 뜻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의 열쇠를 스스로 쥐려 한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그려낸 미래의 인간은, 죽음을 정복하고 신의 자리에 앉으려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그 신의 얼굴은 축복일까, 아니면 괴물일까?
나는 매일 아침 스마트워치가 알려주는 수면 점수를 확인한다. 87점이면 안심하지만, 71점이면 하루 종일 찜찜하다. 넷플릭스는 내가 좋아할 드라마를 추천하고, 스포티파이는 내 기분에 맞는 음악을 골라준다. 편리함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서늘한 의문이 든다.
나는 내 취향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에 의해 '발견'당하는가?
이런 순간마다 하라리가 말한 '데이터교(Dataism)'라는 개념이 선명해진다. 데이터가 신이 되고, 알고리즘이 예언자가 되는 세계. 우리는 스스로를 기꺼이 수치화해 바치고, 그 피드백에 따라 기뻐하거나 불안해한다. 과거에 신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눈을 감던 사람들과, 오늘날 스마트폰 알림을 기다리며 화면을 켜는 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나는 자유롭다고 믿지만, 어쩌면 신의 뜻 대신 알고리즘의 설계를 따르는 또 다른 신도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류는 신이 되려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은 동시에 자유를 잃는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 생명을 창조하는 권력을 손에 쥐려 하면서, 정작 자기 삶의 주도권은 기계에게 넘겨주는 모순 속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하다. 신이 되려는 인류의 꿈이 기술 결정론의 악몽으로 변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이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거대한 연결망을 바라보려 한다. 그 연결의 실체 속에서, 인간이 진정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