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

어느 날 아침, 문 앞에서

by 건강한 오후

외출 준비를 모두 마쳤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멈춰 선 아버지의 시계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현관문 앞에 섰지만, 나의 손은 허공에 멈춰 있다. 매일같이 열고 닫던 익숙한 문인데, 오늘은 어쩐지 낯설었다. 몇 번이고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는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 도어록의 희미한 불빛. 모든 감각이 평소보다 예민하게 다가왔다.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와의 약속도, 의무적인 일정도 없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이 문을 열고 나설 필요가 있는가, 하고.


지난 수십 년간 이 문은 늘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열리고 닫혔다. 문을 나서는 행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몸에 밴 관성이었다. 은퇴 후, 이 문을 스스로 열고 나선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대부분은 마트에 가거나, 병원에 들르거나,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등 무언가를 해야 해서 나섰을 뿐이었다. 내가 나가고 싶어서 이 문을 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문을 열려한다. 어디로 갈까? 가까운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어도 좋고, 오래된 서점의 낡은 책 냄새를 맡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어쩌면 첫 골목을 지나 발길을 돌려 그대로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문을 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오늘은 다르다. 이 문은 내가 열고 싶어서 여는 문이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차가운 금곡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천천히 돌린다. 철컥. 선명한 소리. 문이 천천히 열린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복도의 고요한 공기, 희미한 햇살 한 줄기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주 작고 나른한 생활 소음들.


문밖의 세상은 어제와 같다. 나는 한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