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한 존재가 품은 거대한 희망을 보며
며칠 전, 아침 산책길에서 낙엽 사이에 굴러온 씨앗 하나를 주웠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참 작았다. 매끈한 껍질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바람에 떠밀리다 멈춘 듯한 그 모습에 손이 갔다. 목적지도, 누가 심어주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존재였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처음 며칠은 그저 물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길이 자주 갔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커피를 마시다 문득 그 작은 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 소리도,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거기 있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 이상하게도 어떤 생동감이 있었다. 겉으론 완전히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깨어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작은 화분에 씨앗을 묻었다. 흙은 손끝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이토록 작고 가벼운 존재를 감싸며 흙을 덮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같은 방, 같은 일상, 같은 풍경 속에서 느리게 식어가던 내 마음 한쪽이, 아주 작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화분을 들여다본다.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다. 씨앗이 지금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 흙 아래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 있음을, 언젠가 다시 빛을 향해 올라올 것을 안다. 기다림이란 결국 신뢰의 다른 이름이다.
며칠 전에는 새벽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화분 위로 비쳤다. 빛의 결이 흙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서서히 풀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 단단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씨앗도, 나도,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멈춘 시계와 닫혔던 문을 지나, 이제 내가 바라보는 것은 흙 속의 한 점이다.
오늘도 나는 그 씨앗 앞에서 잠시 멈춘다. 아무 소리도 없지만, 확실히 무언가가 숨 쉬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호흡이 내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숨이 있다. 가장 조용한 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