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다시 바라본다.
다시 중국이다.
중국인 하면 ‘시끄러운 이웃’, 중국 제품 하면 저품질과 모방, 짝퉁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전기차 세계 판매 1위 기업 비야디(BYD), 상업용 드론의 대명사 DJI는 모두 Made in China를 달고 전 세계로 나간다.
몇 년 사이에 중국은 어떻게 변한 걸까? 우리는 중국에 대해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한국보다 1.5배 "빨리빨리"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만원 지하철이나 백화점 경품 이벤트 등에서 보이는 빨리빨리는 우리를 스트레스로 밀어 넣지만, 때론 긍정적인 자극이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추진력이 오늘날 한국을 있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체 300여 개를 대상으로 ‘우리 기업 혁신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 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는 결론에서 “과거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 세계가 놀랄만한 고속성장을 일궜지만 속도의 경제 시대인 지금 국내 기업의 혁신 속도는 중국에도 뒤지는 것이 현실”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실제 ‘중국이 한국보다 혁신 속도가 빠른가?’라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85%가 ‘그렇다’고 답했다. ‘중국이 100km의 속도로 변한다고 할 때 변할 때 한국은?’이라는 질문에는 평균 71km라고 응답했다. 느릿느릿하고 여유가 있는 듯해 보였던 ‘만만디(慢慢地)’ 중국이 한국보다 1.5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쥐(BAT)의 역습
우리나라 ICT 산업을 삼성전자가 대표한다면, 중국은 박쥐(BAT)가 대표한다.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검색 포털인 바이두, 11번가나 G마켓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카카오와 같은 게임 및 SNS 업체 텐센트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과 비교했지만, 규모는 대략 20~200배이다.
최근 알리바바를 꺾고 박쥐 중 일인자로 올라선 텐센트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5조 9천억이다. 같은 기간 네이버 2,727억, 카카오 266억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8조 1천억으로 텐센트에 비해서 2조 2천억이나 더 벌었지만, 시가총액에서는 삼성전자는 235조 원으로 오히려 텐센트 270조 대비 낮다. 텐센트가 주식시장에서 향후 성장성 등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쥐 기업은 모두 소프트웨어 기업인데,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라는 측면도 크게 다르다. 특히 텐센트는 지난 6월 ‘Clash of Clan’ 게임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슈퍼셀을 10조 원에 인수하는 등 게임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고, 한 달에 10억 명 가까운 사용자가 쓰는 ‘위챗’이 간편 결제, 음식 주문, 택시 호출, 송금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텐센트는 카카오톡의 초기인 2012년에 720억을 투자해서 페이스북 메신저 사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마커스 부사장은 위챗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준다”라고 극찬하며 “페이스북 메신저를 (위챗처럼)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세계가 중국을 배우려 하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8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R&D 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우리나라에는 애플스토어(애플의 직영 소매점)조차 없는데, 중국에는 벌써 41개가 있다. 팀 쿡 CEO는 5월에도 중국의 앱 개발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중국의 혁신은 애플 정신과 부합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은 당시 택시 앱 디디추싱에 10억 불 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애플의 투자는 중국생명보험, 알리바바 등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WSJ에 따르면 이때 조달된 투자액만 70억 불, 우리 돈으로 8조 2 천억이라고 한다. 카카오택시 같은 앱에 8조 2천억 원의 자금이 몰리는 것이다.
중국의 경쟁력
비단 ICT 산업뿐일까? 산업연구원은 지난 6월 말 ‘주력산업의 수출부진 원인과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를 발간했다. IT(가전, 정보통신기기, 디스플레이, 반도체), 기계(자동차, 조선, 일반기계), 소재 및 생활산업(철강, 석유화학, 정유, 섬유, 음식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2개 산업이 부진한 이유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물이다. 놀라운 것은 중국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도 이제 한국의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에서. 심지어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중국의 경쟁력이 더 앞선다. 전체적으로 75∼85%까지 쫒아 왔다. 그 정도 격차는 최근에는 수년 안에 따라 잡히는 수준이다.
(세계일보 기사)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嫦娥) 3호와 탐사로봇 옥토끼(玉兎)는 달 탐사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우며, 달의 지질학적 구성과 표면 물질에 대해 지금까지 7 테라바이트 분량의 자료를 1천 곳 이상의 연구소와 대학에 전송해 오고 있다. 중국의 미디어 그룹 완다는 우리나라의 CJ CGV와 같은 미국의 영화관 업체 카마이크(미국 내 점유율 4위)를인수했다. 정확히는 2012년 인수한 AMC 엔터테인먼트가 카마이크를 인수한 것인데, 이번 인수로 스크린 수 기준 미국 내 1위가 되었다. 미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면, 중국 자금이 들어간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자본이 미국 문화의 심장에 까지 닿아 있다. (완다 그룹은 영국 영화관 업체 Odeon & UCI 인수를 시도하는데, 이 업체는 유럽 내 1위 업체이다.) 제주도 땅이 중국인 손에 넘어간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의 영토와 문화, 우리 기업만 중국 자금의 우산 밑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국의 미래
지난해 중국에서 창업한 기업이 440만 개다. 두 자릿수 성장을 끝내고 저성장을 의미하는 신창 타이(新常態·뉴 노멀 시대) 진입을 공식 선언한 중국 정부는 창업정신으로 다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회사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 규정을 기존 3만 위안(약 500만 원)에서 1위안, 그러니까 170원으로 낮췄다. 아이디어와 자신감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업하라는 것이다. 올해는 창업 기업이 600만 개가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3만 개 수준이다. 지난해 무역협회가 한중일 3개국 대학생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우리나라의 대학생 중 6.1%가 창업을 희망하는 것 대비 7배 수준인 40.8%가 창업을 원한다고 답했다.
세계 ICT 산업과 제조업, 문화산업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보다,
중국이 이끌어갈 미래가 더 두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