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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Mar 10. 2016

문과 출신 회사원이 느끼는 AlphaGo (2016)

전투, 전술, 전략을 생각하며

복잡했다.
이세돌의 패배는 “혁명”, 그러니까 나 같은 개인 혹은 소시민은 어쩔 수 없는 ‘구조적’ 이슈라는 평가를 하고 뒤로 숨어버렸다.


생각했다.
200여 년 전 산업혁명, 자동으로 섬유를 짜는 방직기에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 노동자들이 기계 파괴에 나선 것(‘러다이트’ 운동)과 나의 지금 처지는 본질에서 다른가?



[사례] 문과(경제학 전공) 출신 회사원의 전형적인 Work Flow.

 ① 위로부터의 지시를 받는다. (예. “인공지능 산업에 대해 다음 주까지 알아보라! 워드 5장 정도.”)


 ② 팀 동료들이나 주변 지인들과 혹은 혼자서 Brain-storming.


 ③ Google과 NAVER, 또 회사 내외부의 사이트로 관련 자료 수집.


 ④ 정의(Definition), 산업의 규모 및 경쟁 상황, 규제 등 기본적 [외부 환경분석] 작성. (워드 1장)


 ⑤ 내부의 관련 팀과 담당자들에게 연락해 [내부 환경분석] 작성. (워드 1장)


  이상의 SWOT 분석 결과, 3가지 정도의 [Option] 도출. (워드 1장)


 ⑥ Option 별 장단점을 비교·분석하여 [최종 결론(案)] 도출. (워드 1장)


 ⑦ [기타 이슈, 향후 To-do(Work-plan), 추가 Discussion Agenda] 등으로 마무리. (워드 1장)

 ⑧ (번외) 경영층에게 보고 드리기 위해 무수한 빨간 펜 작업을 거친다. (문구 및 ‘국어’[유려한 문장] 포함)


대학교 신입생, 아니 똘똘한 중고등학생이 일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⑧번이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은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인간 사이의 ‘소통’의 이슈다. (※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①~⑦에 쏟는 시간과 노력의 2~3배를 ⑧에 쓴다. 소위 ‘Communication’이나 ‘Delivery’라고 하는 것!)

회사원인 나와 중고등학생 간에  외에 약간의 차별화라고 하면, △윗분들의 의중을 읽어내는 것(‘이 일을 왜 시킨 걸까?’), 정무적 판단, 그동안 사내에 쌓인 자료에 대한 Access, 영어로 된 전문 사이트를 조금 더 접하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적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무직의 Work Flow는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우주의 원자수보다도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바둑(碁, Go)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무직은 경영층의 ‘의사결정’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여 ‘Option’을 제시하는 것을 Mission으로 한다. ‘시간과 체력, 정신력의 제한된 범위’ 그러니까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산제약 하의 효용 극대화’라는 원칙 아래에서 일한다. 이것은 한 달에 200~250시간의 Billable Hour를 채워내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나, 관련 분야의 논문(선행연구)을 학습하고 그것들의 빈틈을 찾아 본인의 Edge를 세우는 대학교수(연구자)나, 혹은 밝혀진 Data와 Technique을 학습하고 이를 약간의 불안감을 감수하면서 실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볼 때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 사무직에 모두 같이 적용될 것이다.


고백하자면...

회사원으로서 나는, 고차원적인 ‘지능’보다는 ‘알고리즘’ 혹은 ‘프로그램’에 가깝게 일하고 있다. 그것도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저급한 알고리즘이다. J.M. Keynes가 이야기 한 “투자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함수”는 낭만적인 지적이지만, 실제 직관이나 Gut, 경험, 고차원적 지능은 내 업무의 영역에서 어찌 보면 작은 부분이다. 더군다나 나는 어제의 이세돌 九단보다 무수히 많은 실수를 한다.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경우에 머뭇거리고, 좌절하고, 멈추고, 반성한다.


요약하자면,
“자료를 제한된 범위에서 분석하고, 본인이 학습한 Framework에 따라 Option을 세우며, 이를 지식, 혹은 경험과 감각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결국 사무직 회사원의 주된 업무 영역이자 방법론인데, 기계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어제 AlphaGo가 보여준 것, DeepMind가 몇 개월 만에 업그레이드시킨 알고리즘이 단지 “바둑”이나 “사무직 회사원”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 A.I.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인간만이 가진 창의성의 영역, 그러니까 예술이나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경우의 수를 나열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바둑판의 19*19처럼 도화지를 Pixel 단위로 하고 그동안의 명작을 학습한 뒤 각각의 Pixel마다 사람의 감정을 최대로 끌어내는 그림, 혹은 기존의 소설의 Plot을 죄다 학습한 뒤 가장 잘 읽힐 만한 문장으로 뽑아낸 소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Digital화 된 Offline의 지도 정보에 신호등, 보행자, 차량 등을 Data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는 ‘자율주행’도 머지않은 미래다.


결국,

Data와 의사결정이라면 기계가 너무나 잘하는 영역이기 때문. (그래서 혹자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에서 “Motion”을 이야기한다. 기계가 인간을 단기간에 따라 잡기 어려운 것은 S/W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H/W적인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DARPA Robotics Challenge의 2족 보행 로봇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기해 보자면...)


언젠가 전투, 전략, 전술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 “예순아홉 차례의 진검 승부에서 살아남은 불패의 화신, 일본의 전설적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와 싸워 이기는 법은?”


 □ 전투 : 정성껏, 성심성의껏 연습하여 싸운다.


 □ 전술 : 술수나 계책, 그러니까 미인계 같은 것을 내세워 효율적으로 싸운다.


 □ 전략 : 용병을 고용하거나 자동권총이나 기관총으로 쏜다. 적의 방법대로 싸우지 않는 것, 적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


무엇이 기계와의 싸움에서 ‘전략’일까?

24시간 중의 8시간은 자야 하고, 술도 마시고, 피로도 느끼고, 감정도 왔다 갔다 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다 치고, 이제 18개월밖에 안 된 우리 아들은?


“인간적 고뇌”가 많은 하루다.


(p.s)
어제 운전을 하다 앞 차들끼리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난 것을 목격했다. ‘직진’ 주행 신호등이 켜진 것을 ‘직진 + 좌회전’으로 잘못 인지한 뒤 차량의 ‘인간적’인 실수. 자동차 사고의 대부분은 기계라면 저지르지 않을 졸음운전이나 판단 착오에 의한, 즉 ‘실수’에 기인한다. 기계에 운전을 맡기면 위험하다고? 설마, 운전 중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만큼이나 위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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