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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Mar 14. 2016

싸이월드論 (2005)

Cyworld에 대한 단상

#1

싸이월드(cyworld 혹은 쵸재깅)라는 공간에 대해, 그 공간의 메커니즘에 대해 언젠가 임종대 형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종대 형은 만들어진 이미지 따위 보지도 속지도 말라고 했다.


일정 부분 공감한다.


동시에 반박할 수 있다. 옷은 왜 입는가.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요한 날에 검은색 시계를 차고 샤넬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손톱을 다듬고 양말 색 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이 되었든 온라인이 되었든 우리가 행하는 기제는 굳이 심리학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의 꿈을 반영한다. 애써 해 보이려는 것, 애써 똑똑해 보이려는 것. 우리는 꿈꾸고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


그 장면 장면에서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 사진 속의 나는 늘 같은 웃음이라도 같은 웃음일 때가 없다. 늘 나이지만 늘 내가 아니다. 기억하고 싶은 나를 남긴다. 기억하고 싶은 그들을 남긴다. 다행히도 영상이 아니라서 좋다. 영상이라면 너무 생각할 것이 많아지지나 않을까.


내 싸이에는 글도 있고 사진도 있다. 생각할 것이 많아서 쓰기도 하지만 생각할 것을 줄여주기도 한다. 싸이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서 좋다. 키가 작은 사람과 큰 사람, 옷이 몇 벌 없는 사람과 옷이 많은 사람, 시계가 하나뿐인 사람과 요일마다 시계를 갈아 차는 사람, 모두가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난 똑같이 꾸며진 싸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2

아는 후배가 소개팅을 한다고 한다.

 

소개팅에 착수(?)할지부터,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에게 난, 

“그 사람 싸이에 가 봐!”



영화를 보기 전, 관객의 대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영화에 대해 눈과 귀를 닫는 것. 결말을 눈치채게 되거나 중요한 사건의 흐름을 알게 되면 영화가 시시해지기 때문. 극도로 준비된 반전을 이미 알고 가는데 영화가 흥미로울 이유가 없다.


반면, 영화에 대해서 소상히 조사하는 부류. 예고편도 보고, 배우나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를 살핀다. 제목의 의미도 고민해 보고 무엇보다 감독의 색깔을 살핀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감독의 시선을 채울만한 영상이 나올 때까지 영화는 거듭 찍히고 찍힌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수많은 소품이 쓰이고 제작비가 쓰인다. 배우 역시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감독의 잘 준비된 소품의 일종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누가 말했다. 그렇지만, 하늘 아래 똑같은 영화를 본 적이 적어도 난 없다.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같은 주제에 대해서 언급하더라도 감독은 자기만의 시선을 양보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과 OST 까지도 감독의 의도 하에 잘 준비된 채로 관객을 맞는다.



#3

하여 (두 번째 부류인) 난 영화를 보기 전에 나름의 준비 운동을 한다. 


영화는 길어봤자 두 시간 남짓이기 때문에 첫 부분이 중요하다. 그 첫 부분에 난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싫어한다. 시시콜콜한 영화의 신상명세에 관심을 두면 영화가 주는 매력에 빠질 수 없다. 아무런 schema 없이 영화를 대하면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도대체 결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궁금해하고 있으면 동시에 많은 활동사진이 지나가 버린다. 감독이 정성스레 차려놓은 밥상에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 어떤 종지를 썼는지 밥은 쌀밥인지 잡곡밥인지 어떤 밥솥에 지었는지를 봐야 하는데, 식탁 의자의 불편함이나 처음 맛보는 반찬의 신기함에 그만 밥상을 차려놓은 감독의 정성스러움을 잊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영화관에 가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실패의 경험도 있고 성공의 경험도 있다. 아무리 나와 친한 친구의 추천이라도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영화일 수 있는 것.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경험상 그다지 실망시키지 않지만 소수 주변인의 추천은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주변 친지들이 나를 잘 알고 부인할 수 없지만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나 스스로가 아닌가?


잘 만들어진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는 절대 결론이나 반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영화에 대해 더 큰 궁금증을 일으킨다. 때론 예고편에 속아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예고편도 못 보고 당하는 두 시간의 졸음보다는 낫다.



#4

다시 싸이로 돌아와서.


싸이를 대충이라도 살피면 대략의 신상명세가 꾸며진다. 그럼으로써 실제 만남에서의 상당 부분 수고를 덜어준다. 신상명세 따위 중요한가? 우리는 호구조사를 하러 그 사람 싸이에 방문한 것이 아니다. 너무 심각하게 재단하지 말자. 단지 느끼면 된다. 우리는 연예기획사 매니저나 미스코리아 대회 심사위원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하고 그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다. 그걸 알 수 없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해 내는지를 보면 된다. 모두 다 비공개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길 꺼려하는 성향이 있다고 보면 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진다.


easygoing. 멋진 단어. 쉽게 가자.

glance. 멋진 단어. 힐끔 보자.


셀카를 찍을 때는 어떤 표정인지를 본다. 셀카는 마치 거울 속에 나타난 그와 같기 때문이다. 잘 꾸며진 싸이는 잘 만들어진 예고편이다. 잘 꾸며졌다고 해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거나 더 많은 시간을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쉽다. 압축해서 잘 표현해 내면 되는 것이다. 입사 면접을 볼 때 자기소개도 3~5분이면 되는데, 굳이 많은 시간 모든 것을 보지 않아도 좋다. 대략적인 분위기를 보는 것이고 흥미롭다면 추가적인 것들을 좀 더 알아봐도 좋다.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와 중요한 배경을 언급한다. 등장 인물도 소개되고, 주로 영화의 흥미로운 점을 부각한다. 동시에 잘 만들어진 싸이는 절대 그 사람의 결론이나 반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나의 장래희망이나 이성관에 대해 직접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그것마저 활자화하거나 사진으로 남겨 버린다면 반전을 알고 가는 영화 마냥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흥미로운 예고편이 불러일으키는 영화관으로의 초대처럼!



#5

물론 모든 영화가 예고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예고편의 재미가 영화의 재미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고편으로 많은 것을 지레짐작하는 것도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도 무리수다. 그럴싸한 예고편에 속아 감독을 욕하는 경우도 많다. 예고편 만들기를 귀찮아하는 감독도 있고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감독도 있다. hit에 힘을 쏟는 흥행주의 감독들이 있고, 자신만의 시선과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주의 감독도 있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진 감독들도 물론 있고, 무늬만 감독인 분(!)들도 계시다. 


그러나 감독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예고편을 정성 들여 준비하는 것은 관객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아닐까? 수많은 영화 중에서 다른 영화가 아닌 그 영화를 택해서 황금 같은 주말을 감독의 밥상과 두 시간 동안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예고편은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로 의도했겠지만!)


난 아직도 영화관에 가기 전에는 감독이 준비한 예고편과 줄거리를 기쁘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살핀다.


그것이,

영화를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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